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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손에 숨진 8살 여아…출생신고 안 된 ‘투명인간’으로 살았다

등록 2021-01-18 13:25수정 2021-01-18 19:27

이웃 주민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아…교류 없어”
출생 신고조차 하지 않아 8년간 사각지대에 방치
전문가들 “출생 통보제 도입 필요해”
8살 여아가 숨진 채 발견된 인천 미추홀구 한 빌라에 폴리스라인이 처져 있다. 이정하 기자
8살 여아가 숨진 채 발견된 인천 미추홀구 한 빌라에 폴리스라인이 처져 있다. 이정하 기자

18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문학동 한 빌라 1층 빈집에는 여러 겹의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었다. 이 집에는 출동한 소방당국와 경찰이 잠금장치를 뜯어낸 흔적만 남아 있었다.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8살 어린이 ㄱ양이 숨진 채 발견된 곳이다. ㄱ양은 지난 8일 친엄마 백아무개(44·여)씨의 손에 살해돼 지난 15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백씨는 1주일간 숨진 딸의 주검을 이곳에 방치했다가 “아이가 죽었다”며 119에 신고했다.

백씨와 같은 층에 사는 이웃 주민은 “내가 6개월 전에 이사를 왔는데, 엄마와 아이가 바깥에 잘 나오지 않아서 본적이 거의 없다”며 “코로나 때문에 등교하지 않으니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말했다. 다른 이웃들도 백씨네 가족과 교류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백씨가 살던 집은 숨진 아이의 친아버지자 동거남인 ㄴ(46)씨가 실제 계약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ㄴ씨는 지난 15일 경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뒤 연수구의 한 아파트단지 지상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ㄴ씨가 딸을 보살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ㄴ씨의 휴대전화에선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내용의 메모도 발견됐다.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여아는 말 그대로 ‘투명인간’이었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씨는 남편과 이혼하지 않은 상황에서 ㄱ양을 낳게 되자 법적 문제 때문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백씨는 6개월여 전 ㄴ씨와 결별한 뒤 ㄱ양을 홀로 키웠다. ㄱ양은 8년여 동안 의료보험은 물론 보육, 의무교육인 초등학교 입학 통지 등 기초적인 복지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방치됐다. 초등학교 입학 예비소집에 나오지 않는 아동의 경우, 소재나 안전이 확인되지 않으면 교육 당국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지만, ㄱ양과 같이 주민등록이 없으면 이런 대책도 무용지물이다.

백씨는 미추홀구에 전입 신고도 하지 않아 행정 당국은 실제 거주 사실조차 몰랐던 것으로 확인됐다. 미추홀구 관계자는 “전입 신고를 하지 않아 언제부터 거주했는지, 자녀가 있었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며 “경찰이 수사 중인 사안이라서 기초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전 주소지 등 세부적인 내용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수사 초기 백씨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알려졌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백씨는 지난 17일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범행 당시 화장실 바닥에 이불과 옷가지를 모아놓고 불을 지르며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지만,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그는 경찰에서 “생활고를 겪게 되면서 처지를 비관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백씨를 상대로 범행 동기 등 구체적인 범행 경위를 조사 중이다.

전문가들은 ‘출생통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김수정 민변 아동인권위원회·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우리나라 출생아동의 98.7%가 병원에서 태어난다. 병원이나 의료보험공단에서 출생과 동시에 행정기관에 '생명 탄생' 사실을 통보하도록 제도화 해야한다”며 “법무부 등에서 수년간 연구도 이뤄지고, 법안도 제출됐지만 진척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보험 기록과 실제 출생신고가 됐는지 여부를 전수조사하면 일부는 미신고 현황을 파악할 수 있지만, 병원 밖 출생은 여전히 파악하기 어렵다”며 “출생통보제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제도화해야 사각지대가 줄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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