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앞줄 왼쪽 다섯번째)이 27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안심소득 시범사업 자문단 위촉식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심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설전이 뜨겁다. 오 시장은 200~300가구 시범사업을 실시해 “체계적이고 정교한 실험”으로 안심소득의 효과성을 입증하겠다는 태도지만, 기존 복지제도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의 관계 때문에 시범사업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의 빈곤층 복지제도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재산과 소득수준에 따라 수급자격을 평가하고 급여를 지급한다. 기초생활보장급여를 지급할 때는 다른 공적이전소득(기초연금·국민연금 등 국가에서 지급하는 급여)을 ‘소득’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중복지급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소득 하위 70% 65살 이상 어르신에게 매달 30만원씩 지급되는 기초연금도 생계급여 수급자는 기초연금만큼을 공제하고 지급해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서울시의 안심소득도 마찬가지다. 오 시장이 애초 공약한 안심소득은 전체 가구를 1등부터 100등까지 줄세웠을 때 50번째에 해당하는 소득인 중위소득 100% 미만 가구(1인가구 기준 182만여원)를 대상으로 중위소득 100%에 미달하는 소득의 절반을 지급하는 것으로 설계됐다. 소득이 없는 1인가구는 (182만원의 절반인) 91만여원을 받을 수 있어, 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 52만여원보다 수령액이 많다.
그러나 안심소득 급여를 받으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는 못받는 것은 물론, 안심소득 급여가 소득으로 인정돼 현물성 급여인 의료·교육급여나 주거급여 등 수급자격을 잃을 수도 있다. 수급자에게 부여되는 공공임대주택 입주 자격, 통신·전기요금 감면 등도 못받을 가능성이 크다. 교육급여나 의료급여가 많을 수밖에 없는, 자녀가 있거나 질병을 앓고 있는 경우엔 안심소득이 더 불리할 수도 있다.
오 시장은 이 지사와의 논쟁 과정에서 사업 대상을
“중위소득 60%나 50% 정도로” 축소할 가능성도 언급했다. 하지만 이 경우엔 받을 수 있는 안심소득 급여와 생계급여 액수의 차이가 줄어들어 정책효과 검증이 더 어려울 수 있다. 오 시장은
“기존 복지체계와의 충돌 가능성, 수혜자의 행정접근 편의성 등 총체적 측면에서 (안심소득이 기본소득보다)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하지만, 현실은 ‘기존 복지체계’와의 관계 때문에 안심소득 시범사업도 어려울 가능성이 큰 셈이다.
지난달 27일 안심소득 시범사업 자문위원회를 출범시킨 서울시도 이 때문에 시범사업 대상자 선정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범사업 대상에서 기초생활수급자를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아울러, 지방정부의 새로운 복지서비스는 중앙정부 사회보장위원회를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의 보건복지부 협조가 중요하다. 보건복지부 쪽은 “서울시가 안을 만들어 제출하면 이를 바탕으로 협의할 방침”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기초생활보장제도와의 관계 설정은 기본소득 정책에서도 주요한 고려 대상이다. 경기도에서 2019년부터 시행한 청년기본소득도 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 수급 청년은 청년기본소득(분기당 25만원)을 받은 만큼 감면된 생계급여를 지급 받을 수밖에 없었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는 2016년 서울총회에서 “우리는 사회서비스나 수당을 대체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계층, 취약계층, 또는 중저소득층의 처지를 악화시킬 경우 그러한 대체를 반대한다”는 대원칙을 정한 바 있으나, 기초생활보장제도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할지에 대해선 학자들 사이에서 견해가 갈린다.
백승호 가톨릭대 교수(한국기본소득네트워크 이사)는 “정책적으로 ‘빈곤’에 대한 판단기준을 얼마로 잡아야 할지에 대한 합의가 우선”이라며 “중위소득 50% 정도(1인가구 기준 91만원)를 그 기준선으로 잡는다면, 기본소득과 생계급여 합산액이 이를 초과할 경우에만 기본소득 지급액을 제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이 경우 기본소득과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모두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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