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4층에 연결된 야외 난간뜰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아 아카데미의 친구들 범시민연대 제공
아카데미극장 철거 공사를 강행하려는 원주시의 용역업체와 이를 막아선 극장 보존 쪽 시민단체가 물리적으로 충돌했다.
강원 원주경찰서는 아카데미의 친구들 범시민연대(아친연대) 관계자 6명을 업무방해와 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들은 최근 원주시가 극장 철거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극장에 몰래 들어가 무단 점검하고, 철거 현장 입구를 막는 등 공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극장 보존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인 아친연대 회원과 영화인 단체 등 50여명은 지난 28일 새벽 5시부터 극장 철거 현장 앞에서 인간 띠를 만들어 철거 용역업체 진입을 막았다. 원주시는 철거 공사가 지연돼 주변상권 피해가 발생하고 있고, 최근 내린 집중 호우로 철거 중인 극장 건물의 안전에 위험이 커졌다고 보고 철거 강행을 예고한 상태였다.
이날 현장에는 이은 한국영화제작자협회장과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관장, 최윤 전 부산영상위원회 위원장 등이 동참해 “한국 영화의 미래와 원주 아카데미극장의 보존은 연결돼 있다. 극장을 무조건 없앨 것이 아니라 문화를 통한 상생 방안을 다양한 전문가 의견 수렴을 통해 모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계속된 대치 속에 철거 현장으로 진입하려는 용역업체와 이를 막아선 보존 쪽 관계자들이 서로 뒤엉키면서 몸싸움으로 번졌고 일부 시민들이 다쳐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아친연대 관계자 등 시민 3명이 건물 4층에 연결된 야외 난간뜰에 들어가 고공 농성에 돌입하면서 철거 공사는 일시 중단된 상태다. 고공 농성자들은 “우리를 올려보낸 건 대화를 걷어찬 원주시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충분한 논의 시간을 제안했지만 원주시는 한 시간 면담으로 때우고 철거를 강행하려 했다. 원주시는 약속 파기를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경찰은 고공 농성에 나선 이들을 설득 중이지만 아친연대는 ‘토론이나 여론조사 등 합리적 의견 수렴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철거 중단 시위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보여 대치 상황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앞서 아친연대 관계자 1명은 지난 20일에도 극장 지붕과 천장 사이 구조물에 올라가 철거 중단과 시정토론을 통한 철거 여부 결정 등을 요구하며 고공 농성을 벌이다 엿새 만인 지난 25일 원주시장과의 면담 등을 조건으로 내려온 바 있다.
강원녹색당은 이날 성명을 내어 “원주시의 기습 철거 시도는 불과 3일 전에 아친연대와 면담을 거친 후에 진행됐다. 아친 쪽은 시정토론과 여론조사를 요구했고, 원주시는 논의 후 공식 입장을 내겠다고 했는데 원주시의 공식 입장이 이것이라면 이는 매우 무례한 방식의 선전포고다. 원주시는 지금 당장 폭주를 멈춰야 한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정의당 강원도당도 “극장 위에서 농성 중인 시민은 여성 2명과 남성 1명이다. 원주시는 어제 단 한 차례 최소한의 물품이 반입된 이후 꼬박 하루가 지나도록 아무런 물품 반입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인권에 관련된 최소한의 물품조차 막고 있다. 화장실 이용도 절대 안 된다며 농성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시민들이 극장 위로 올라간 책임은 명백히 원주시의 불통행정에 있다. 원주시는 인권침해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 문을 연 단관극장이다. 40년 넘게 시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극장은 2005년 원주에 멀티플렉스 극장이 상륙하자 다음 해인 2006년 문을 닫았다. 극장이 철거 위기를 맞자 이를 안타까워하던 시민들이 중심이 돼 ‘옛 극장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을 지켜야 한다며 보존 활동을 하고 있다.
박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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