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전국 호남

“광주학생독립운동 주역 장재성이 숨진 곳은 운암산 자락”

등록 2021-06-22 17:45수정 2021-06-22 21:03

기념사업회, 71년 만에 처형지 확인
안내판 설치·매년 추모제 등 계획
6·25전쟁 당시 시국사범들이 처형 당한 곳으로 추정되는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산동교 인근 아파트단지 내 소나무숲에서 22일 장재성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이 묵념하고 있다.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6·25전쟁 당시 시국사범들이 처형 당한 곳으로 추정되는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산동교 인근 아파트단지 내 소나무숲에서 22일 장재성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이 묵념하고 있다.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끌었지만 좌익 혐의로 6·25전쟁 때 총살당한 고 장재성(1908∼1950) 선생의 처형 장소가 확인됐다. 장재성기념사업회는 정확한 실태조사와 함께 국가폭력으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희생자들의 추모사업을 촉구했다.

22일 오전 장재성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은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산동교 인근 운암산 자락의 한 아파트단지 내 소나무숲에 작은 꽃다발을 놓고 묵념했다. 장 선생이 1950년 7월5일 처형당한 장소로 추정되는 곳이다.

산동교 주변은 현재 아파트, 병원, 상가건물 등이 들어선 번화가로 변모했지만 70여년 전에는 광주 변두리의 한적한 지역이었다. 6·25 때 국군은 산동교를 사이에 두고 국도 1호선(신의주∼목포)을 따라 내려오는 인민군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다. 장 선생의 처형 장소는 국도 1호선과 가까우면서도 인적이 드문 곳이다.

지난해 6·25 70주년을 계기로 창립한 기념사업회는 장 선생의 유족과 연락이 닿으며 장 선생의 처형 장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들 상백(79)씨는 지난달 기업사업회 쪽에 “1950년 7월27일 산동교 인근에 아버지 주검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지만 부패가 심해 수습하지는 못했다. 10살 나이에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마다 광주 동구 금동 집에서 운암동까지 자전거를 타고 처형지를 방문하곤 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2010년 상반기 조사보고서’의 내용과도 일치했다. 당시 광주형무소 근무자들과 주둔했던 군인들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헌병이 광주에서 장성 넘어가는 산동교 인근 야산에서 광주형무소에 수감된 여순사건 관련자와 좌익사범들을 처리했다”고 진술했다.

박동기 남녘현대사연구소 소장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지 이승만 정부는 북한에 동조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전국 형무소에 수감된 3년형 이상 시국사범을 처형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국군 5사단 20연대 헌병대는 1950년 7월부터 8월까지 당시 광주 동구 동명동에 있던 광주형무소에서 매일같이 시국사범 60∼80명을 트럭에 태워 이곳으로 싣고 와 죽이고 묻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박 소장은 이어 “수습하지 못한 수십 수백구의 주검이 운암산 자락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파트단지와 도로가 조성돼 발굴조사는 힘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재야사학자들은 기록 부족으로 장 선생이 광주형무소 인근 무등산 자락에서 처형당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통일운동가 고 이기홍(1912~96) 선생은 “1950년 7월4일 인민군이 한강을 넘어 남하하자 이승만 정부는 수감돼 있던 시국사범들을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광주형무소는 보도연맹원들을 처형하기 전 장재성 등 시국사범을 먼저 사살했다”는 구술을 남겼지만 장소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끈 장재성(오른쪽) 선생의 가족사진. 장재성기념사업회 제공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끈 장재성(오른쪽) 선생의 가족사진. 장재성기념사업회 제공

황광우 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은 “그동안 광주형무소 희생자들은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혀 유족회조차 구성되지 못했다. 이곳에 안내판을 설치하고 매년 추모제를 지내 장 선생 등 국가폭력의 희생자 원혼을 위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장 선생은 1929년 10월30일 일본인 학생의 한국인 여학생 희롱 사건을 계기로 양국 학생 간 싸움이 일어나자 한국인 학생에게 ‘식민지 교육 철폐’ 등을 요구하도록 지시했다. 역사학계는 장 선생의 지시로 인해 학생 간 싸움이 일제 항거로 발전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같은해 11월13일 일제 경찰에 붙잡힌 장 선생은 광주학생독립운동 관련자 중 최고형량인 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장 선생은 해방 이후 남북 분단에 반대하며 세 차례 북을 오갔다는 이유로 1948년 징역 7년형을 선고 받고 광주형무소에 수감 중 한국전쟁 때 총살당했다. 박정희 정권은 1962년 독립유공자 표창 대상자에 장재성을 포함했다가 ‘해방 후 조선공산당 가입’을 이유로 서훈을 취소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바로가기: 독립에 청춘 바쳤지만 훈장 대신 총살 당한 장재성을 기억하다

https://www.hani.co.kr/arti/area/honam/967929.html

[단독] “아버지가 반역자로 몰리니 가족들 평생 고통”

https://www.hani.co.kr/arti/area/honam/968271.html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전국 많이 보는 기사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1.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2.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3.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4.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5.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