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방문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참배를 반대하는 광주시민을 지켜보고 있다.김용희 기자
5·18단체 등의 반대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국립5·18민주묘지(5·18묘지) 참배가 무산됐다.
이날 고 홍남순 변호사의 화순 생가와 광주 5·18자유공원(옛 상무대 영창)을 차례로 들른 윤 후보는 오후 4시17분께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5·18묘지 초입에 도착했다. 현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민들은 큰 목소리로 “참배를 반대한다”고 외쳤다.
윤 후보는 지지자들과 경호원, 경찰에 둘러싸인 채 참배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참배단이 있는 5·18묘지 추모탑 앞에는 윤 후보의 참배를 저지하려는 시민 백여명이 운집해 있었다. 동선을 확보하려는 윤 후보 쪽과 자리를 사수하려는 시민들 사이에 극렬한 몸싸움이 빚어졌다.
결국 윤 후보는 오후 4시41분께 참배단 50m 앞에서 캠프 관계자들과 묵념하며 간이 참배를 했다. 윤 후보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5월 광주의 아들이고 딸이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슬프고 쓰라린 역사를 넘어 꿈과 희망이 넘치는 역동적인 광주와 호남을 만들겠다”고 말한 뒤 발걸음을 돌렸다.
100여개 광주시민단체와 5·18 유족 등으로 구성된 ‘윤석열 광주 방문을 반대하는 광주시민단체 일동’은 “망언을 사과하려고 왔다는 사람이 지지자들을 죄다 끌고 와서 마찰을 빚게 하느냐”며 “다시는 광주에 오지 말라”고 외쳤다.
이날 광주 시민단체와 대학생 단체, 오월어머니회 등은 오전 10시부터 5·18묘지에 모여 윤 후보 규탄 행동에 나섰다.
묘역 초입인 추념문에서는 시민 50여명이 ‘학살자 미화하는 당신이 전두환이다’라고 쓴 펼침막을 건채 윤 후보의 참배를 저지하기 위해 길목을 막아섰다. 각자 손팻말을 든 시민들은 1980년 상황을 이야기하거나 윤 후보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참배단이 있는 추모탑 앞에는 희생자 가족으로 구성된 오월어머니회 회원 20여명이 서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거나 “가짜 사과 필요 없다”는 구호를 외쳤다.
묘지로 향하는 도로 300m 구간에는 ‘학살자 전두환 찬양은 민주주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5·18 원혼들이 잠든 망월동에 발도 들이지 말라’ ‘정략적인 가짜 사과쇼 필요 없다. 광주를 더럽히지 말라’는 내용의 펼침막 100여장이 내걸렸다.
경찰은 이날 15개 중대, 여성기동대 제대 2개를 투입해 5·18묘지 출입을 통제해 일반 참배객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경찰은 또 오전 한때 윤 후보 예상 동선을 따라 안전 울타리를 쳤다가, 오월어머니회 회원 등으로부터 “오월 영령 앞에 흉한 울타리가 말이 되느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앞서 윤 후보는 지난달 19일 부산 해운대구갑 당원협의회 방문 자리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고 발언해 5·18단체 등의 반발을 샀다. 이틀 뒤인 21일 “전두환 정권에 고통을 당하신 분들께 송구하다”고 사과했으나, 이튿날 새벽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반려견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올려 사과의 진정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민의힘 최종 대선 후보로 결정된 윤 후보가 10일 광주 사죄 방문을 예고하자, 광주시민단체와 5·18단체는 윤 후보 광주 방문을 반대하는 성명을 잇달아 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