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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배상, 시간과의 싸움…할머니들 떠나도 ‘기억투쟁’할 것”

등록 2022-09-05 19:13수정 2022-09-06 02:03

[짬]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국언 이사장

9월 3일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이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 사무실에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기록을 설명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9월 3일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이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 사무실에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기록을 설명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지난 2일 오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93) 할머니는 광주광역시 양동 집 앞 정자에서 홀로 막걸릿잔을 기울였다. 이날 박진 외교부 장관이 처음으로 양 할머니를 만나러 오자 한·일 취재진, 경찰, 시민단체 회원 등 수십명이 몰려 한때 집 앞이 떠들썩했지만 장관과 함께 인파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한산해진 뒤였다. 양 할머니는 “재판에서 이겼는데 배상금은커녕 사죄도 못 받았다. 장관에게 일본 눈치를 보지 말라고 이야기했는데 얼마나 내 말을 들어줄지 모르겠다”며 멍하게 앞을 보고 이야기했다.

양 할머니 곁을 지키고 있던 이국언(54)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혼자 살고 계시니까 이번처럼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렸다가 떠나면 더욱 쓸쓸해 하신다”며 “마음이 강하신 분이라 그때그때 잘 이겨내시곤 하지만 아흔살이 넘으며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 걱정이다”고 말했다.

“시간과의 싸움.” 지난 3일 광주 쌍촌동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사무실에서 다시 만난 이 이사장은 현재 강제동원 가해자와 피해자가 처한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했다. 20여 년째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 해결 활동을 해온 그에게 강제동원 피해 해법과 한·일 정부 태도 문제, 기억투쟁에 대해 들어봤다.

일제 근로정신대 피해 소송 8명 중
양금덕·김성주 할머니 2명만 생존
2012년부터 배상소송 승소 8번에도
“일 정부·전범기업 시간끌기 전략”

2009년 시민모임 설립해 돕기 나서
“피해자 증언록 등 기억투쟁 준비중”

9월 1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회원들이 광주광역시의회 시민소통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강제동원 피해 해결에 소극적인 한국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9월 1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회원들이 광주광역시의회 시민소통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강제동원 피해 해결에 소극적인 한국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이 이사장은 “양금덕, 김성주, 김혜옥, 이동련, 박해옥, 진진정, 김복례, 김중곤(피해자 유족) 등 1999∼2001년 일본에서 처음 소송을 제기했던 원고 8명 중 지금은 양 할머니, 김성주 할머니 등 2명만 살아 계신다”며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은 피해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면 자신들의 행적을 역사 속에 묻을 수 있다고 판단했 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피해자들은 2012년부터 한국 법정에서 손해배상 소송 1 ∼3심 , 미쓰비시 국내 자산 압류 1∼3심, 압류 자산 강제 매각 1∼2심 등 8번을 승소했는데 미쓰비시가 매번 대법원 판결까지 끌고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의 무성의한 태도에 더해 한국 정부마저 할머니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한국 정부가 배상금을 대신 지급하고 추후 일본 쪽에 청구하는 ‘대위변제’ 방식 논의부터 지난 7월 대법원에 미쓰비시의 국내 자산 매각 판결을 늦춰달라는 취지의 외교부 의견서 제출까지 모두 가해자 편을 들고 있다는 것이다.

양 할머니가 지난 2일 박 장관에게 ‘돈 때문이라면 진작 포기했지요. 나는 일본에게 사죄받기 전에는 죽어도 죽지 못하겠습니다. 미쓰비시가 사죄하고 돈도 내놓으세요. 만약에 다른 사람들이 준다면 절대로 받지 못하겠습니다’라고 쓴 자필편지를 건넨 이유이기도 하다.

이 이사장은 “당장의 관계 개선을 위해 우리 정부가 일본 편을 들고 있지만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등 피해자를 배제한 과거사 청산이 현재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생각해야 한다”며 “일본 재판부가 불법 내용을 모두 인정하면서 일본에 대해 배상청구를 하지 말라고 했을 뿐 한국에서의 청구는 막지 않은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의 권리를 일본에 요구해도 두 나라 사법부의 판단을 훼손하는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 이사장은 “과거 한국사회는 위안부와 근로정신대를 구별하지 못해 위안부로 오해받은 할머니들은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남편과 자녀에게까지 손가락질을 받았던 아픔이 있다”며 “할머니들에게 일본의 사죄와 배상은 지난 80년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회원들이 9월3일 광주 풍암동에서 열린 프린지페스티벌 행사장에 천막을 치고 강제동원 피해를 알리는 팻말을 내걸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회원들이 9월3일 광주 풍암동에서 열린 프린지페스티벌 행사장에 천막을 치고 강제동원 피해를 알리는 팻말을 내걸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이 이사장은 대학원에서 근현대사를 전공한 뒤 <오마이뉴스>와 <시민의 소리>에서 기자로 일하며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과 인연을 맺었다. 이 이사장과 친분을 쌓은 할머니들은 자녀에게조차 말하지 못한 가족사를 털어놨고 그는 2008년 3월 기자를 그만둔 뒤 2009년 시민단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시민모임’을 설립해 본격적인 지원에 나섰다.

이 이사장은 할머니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상황을 대비해 기억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피해 할머니들의 영상과 고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회장의 소송 자료 등을 모아 역사관을 만들어 후대에 할머니들의 삶을 알릴 계획이다.

“고 이동련 할머니는 일본에서 재판을 할 때 신분을 숨기기 위해 한여름에도 꼭 머플러와 선글라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참석해 이금주 회장이 ‘왜 이렇게 서럽게 재판을 하느냐’며 역정을 낸 적도 있다. 지금이야 근로정신대 피해가 알려졌지만 2000년대까지는 할머니들은 골목으로만 숨어다니는 삶을 살았다. 그들의 피해를 인정하고 기억해야 올바른 한일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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