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 전 전주역사박물관장. 이 전 관장 제공
“전라도의 역사를 저항과 차대(차별대우)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정여립 사건도 그런 차원에서 해석됐습니다. 그러나 전라도의 저항은 삶의 높은 질을 추구하는 변혁적 성향을 지닌 것입니다. 또 전라도에 대한 차대는 이 지역의 저력에 대한 중앙정부의 견제적 성격을 지닙니다. 전라도 지역사를 바로 보기 위해서는 저항을 변혁으로, 차대를 견제로 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이동희(64) 전 전주역사박물관장은 최근 낸 책 <조선시대 정여립 모반사건과 전라도>에서 조선의 진보적 사상가로 평가받는 정여립의 ‘모반’을 반역과 차대의 논리에서 벗어나 전라도의 변혁적 지향을 담은 역사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저술은 전북연구원 전북학연구센터에서 수행한 ‘전북학 학술연구 지원사업’의 하나다.
저자는 기축옥사의 원인이 된 정여립 사건에 대해 전라도 지역학 차원에서 살폈다고 설명했다. 기축옥사는 1589년(선조22년)에 ‘정여립 모반’을 계기로 일어났다. 정여립이 양반·평민이 함께한 대동계를 조직해 역모를 도모했다고 해서 3년에 걸쳐 동인 1천여명이 희생됐다. 이로 인해 동인 몰락과 호남 출신 관직 등용에 제한이 가해졌다.
그는 “정여립 사건은 전라도 지역사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호남사림은 선조 때 주요 요직을 차지했으나, 선조22년에 사실 여부가 석연치 않은 정여립 모반사건이 터지면서 중앙정계에서 그 위상이 약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려시대에도 나주·경주·개경세력이 정국 주도권을 놓고 다투었는데, 난데없이 전라도 사람을 등용하지 말라는 ‘훈요십조’가 세상에 나와 나주세력이 퇴조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태조 왕건의 유훈이라는 훈요십조가 국가 문서고가 아닌 제8대 현종 때 최항 개인 집에서 나왔고, 제2대 혜종이 나주오씨 소생이며 최지몽 등 전라도 출신들이 활발히 활약한 고려 초 정치상황과도 잘 맞지 않아 그 실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 왔다”고 덧붙였다.
“전라도에 왜 이런 역사가 되풀이되는지 문제의식을 갖고 정여립 사건의 진상과 전라도에 끼친 영향 등 옥사 전반을 살폈습니다. 기축옥사와 전라도의 역사를 바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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