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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버리’ 전북도 책임론 뒤 정부, 지방폄하 팔 걷었나 [현장에서]

등록 2023-08-17 05:00수정 2023-08-17 08:10

지난 8일 오전 대원들이 철수를 시작해 적막감이 흐르는 전라북도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지.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8일 오전 대원들이 철수를 시작해 적막감이 흐르는 전라북도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지.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수도권 일극주의가 계속되면 수도권은 배가 불러서 죽고 지방은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 된다.”

국민의힘 소속 광역자치단체장인 박형준 부산시장이 2021년 6월 한겨레 인터뷰에서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한 말이다. 메가 이벤트를 졸속으로 추진할 경우 후유증이 크지만, 자원과 재정이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지방정부는 국제행사 등 메가 이벤트를 지역발전의 동력으로 삼으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파리 국제박람회기구 총회에서 2030년 부산 유치를 호소한 것도 지역균형발전을 지원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2030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 활동 지원을 위해 프랑스를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20일(현지시각) 파리 이시레물리노의 제172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장에서 4차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2030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 활동 지원을 위해 프랑스를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20일(현지시각) 파리 이시레물리노의 제172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장에서 4차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전북 부안군 새만금 간척지에서 열린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도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발전을 명분으로 유치한 국제행사였다. 하지만 그 잼버리가 폭염과 운영 부실로 파행을 겪고 참가자들의 원성을 샀다. 일단 혹서기 행사를 배수도 원활하지 않고 나무 한그루 자라지 않는 갯벌 매립지에서 치르려고 한 것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다. 매립 사업도 사업계획 변경 등의 절차를 거치느라 2020년에야 시작돼 2022년에 끝났다. 야영지를 만들기 위한 기반시설을 조성하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개최지 전라북도의 잘못은 여기까지다. 지방 공무원들의 외유성 잼버리 출장이나 지역 업체의 입찰 비리 등은 아직까지 의혹 수준이지 드러난 실체가 없다.

현재 정치권과 언론이 제기하는 ‘전라북도 책임론’의 문제점은 중앙정부가 져야 할 책임까지 지자체에 덮어씌우려 한다는 데 있다. 잼버리 특별법에는 여성가족부 등 3개 부처 장관이 공동위원장인 조직위원회가 행사의 계획과 집행의 최종 권한과 책임을 지는 것으로 명문화되어 있다. 개최지 전라북도는 조직위가 요청한 인력을 파견하고, 잼버리 예산의 20% 남짓한 규모를 할당받아 야영지 상하수도·덩굴터널·배수펌프 설치 등의 업무를 책임졌을 뿐이다. 대회 초반 불거진 파행은 대부분 화장실·샤워장·식당 등 조직위가 맡은 시설의 운영 부실에서 비롯됐음을 잊어선 안 된다.

책임 공방을 지켜보며 우려스러운 건 집권 여당의 책임 있는 주체들 입에서 지방자치의 대의를 부정하는 발언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쏟아져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지난 9일 논평에서 “현재 지자체는 전체 국민 세금의 60%를 가져갈 만큼 권한과 예산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잼버리 대회 준비를 보며 과연 그 권한과 예산만큼의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앞으로 어느 정부가 들어선들 지방자치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겠나”라고 했다. 듣기에 따라 ‘지방자치 무용론’으로 해석될 만한 문제 발언이다. 이게 과연 집권당의 수석대변인 입에서 나올 말인가.

그뿐 아니다. 집권당의 책임 있는 인사들이 하루하루 쏟아내는 보도자료와 발언들을 보면 오로지 ‘전북 책임론’을 부각하는 데만 맞춰져 있다. 지금 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뉴스 댓글난, 커뮤니티 게시판 등을 보라. 개최지인 호남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과 혐오가 넘쳐난다. 국정 운영을 책임지는 공당이 이런 상황을 바로잡지는 못할망정, 거기에 자락을 깔고 그릇된 근거를 제공해선 곤란하다. 대체 그 후과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가.

이번 잼버리 파행은 지방분권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행사는 지역에서 치러지는데 조직과 예산을 중앙정부가 틀어쥐고, 정작 지자체는 인력과 시설을 제공하고 사업비의 일부를 떼어 갖는 위치에 머문다면 그 행사가 제대로 치러질 수 있겠는가.” 조선대 정치학과 교수 지병근의 말이다. 조직의 책임감은 부여된 권한에 비례한다. 지방에 맡겨두면 일이 안 돌아간다는 편견부터 고쳐야 한다. 권한을 넘기고 책임을 물어라. 그게 세상일의 이치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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