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 내 친척이죠.”
지난 14일 오후, 광주시 광산구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만난 정아무개(81)씨는 여러 해 전 남편과 헤어져 홀로 살고 있다. 그를 찾는 이웃은 돌봄서비스 ‘엔딩 서포트’의 자원봉사자이자 동네 통장인 박순금(62)씨다. 정씨는 도움이 필요할 때 박씨에게 연락하려고 그의 휴대전화 번호를 적은 종이를 식탁에 붙여 놓았다. 거의 날마다 집에 찾아오는 박씨에게 정씨는 “나 죽은 줄도 모를까 봐 겁이 났는데, 이젠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광산구 우산동은 혼자 생활하는 주민의 고독사를 방지하기 위해 돌봄서비스 ‘엔딩 서포트’를 전국에서 처음으로 제공하고 있다. 엔딩 서포트는 단절된 세대의 안부를 살피고 유류품 정리, 사망신고 등 사망 후 장례 처리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우산동은 광주시가 주관하는 ‘2023년 광주마을형 복지공동체 구축사업’ 공모에 선정돼 1000만원 예산으로 지난 5월 ‘엔딩 서포트’를 시작했다. 민관 협력 체계를 토대로 사업이 운영된다. 광산구 관내 하남종합사회복지관, 송광종합사회복지관, 광산구장애인복지관, 우리동네의원, 마을건강센터, 하남성심병원, 만평장례식장 등 마을 복지·의료기관 등이 ‘엔딩 서포트’에 힘을 보탰다.
광주 광산구 우산동 엔딩 서포터즈가 고독사한 이웃의 공영장례를 치르고 있다. 광산 우산동 제공
광주시 광산구 우산동 정아무개씨가 식탁에 붙여 놓은 통장 연락처. 정대하 기자
기초수급자 비율이 높고 영구임대아파트가 많은 우산동은 ‘엔딩 서포트’가 필요한 마을이다. 우산동의 1인가구 비율(10월 기준)은 49%로, 광산구 평균 37%보다 훨씬 높다. 2022년 1인가구 사망자 수는 89명으로 우산동 사망자의 43%에 이른다. 이지영 우산동 맞춤형 복지2팀장은 “엔딩 서포트는 1인가구가 급증하면서 나타나는 고독사를 방지하고, 사망 후 장례 처리 문제 등을 돕기 위한 돌봄 정책”이라고 말했다.
엔딩 서포트 대상자는 무연고, 가족관계 단절, 자녀가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고령자들이다. 우산동은 지역에 있는 고령 1인가구 650가구 중 고독사 위험이 있는 150가구를 대상자로 선정했다. 이들 대상 가구를 찾는 건 엔딩 서포트의 자원봉사자인 엔딩 서포터즈들이다. 우산동 주민 36명이 엔딩 서포터즈로 활동하며, 2인 1조로 돌봄이 필요한 이웃을 사흘마다 한차례씩 방문해 안부를 챙기고 있다. 나머지 500가구에 대해서는 마을 공영장례 지원체계를 활용해 사후 복지를 돕는다. 이웃들이 고인의 유류품을 정리하고 사망신고 등의 행정절차를 진행한다.
지난 14일 광주시 광산구 우산동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엔딩 서포트 자원봉사자(가운데)와 담당 공무원이 정아무개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대하 기자
지난 5월 이후 지금까지 홀몸노인 3명이 엔딩 서포트의 돌봄서비스를 받으며 세상을 떠났다. 김아무개(64)씨는 췌장암으로 투병하던 중 세상을 떴으나 가족들이 주검 인수를 거부해 공영장례가 이뤄졌다.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지적 장애를 안고 살다가 폐암으로 사망한 손아무개(81)씨도 엔딩 서포터즈들이 나서서 공영장례를 치렀다. 박아무개(93)씨의 마지막 길에도 엔딩 서포터즈들이 함께했다. 박씨의 가족들이 “경제적 여건상 장례를 치를 수 없다”며 고인의 주검 인수를 거부하자, 엔딩 서포트를 통해 지원받은 장례비 50만원으로 엔딩 서포터즈들이 그의 장례식을 진행했다.
광산구 우산동 엔딩 서포터즈들이 고독사한 이웃이 남긴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다. 광산구 우산동 제공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서로에게도 투명인간이었던 투명인간들 / 한겨레21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51063.html
•연인도 인연도 남김없이 / 한겨레21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064.html
•죽어서 보이지 않는 나는 살았을 때부터 유령이었다 / 한겨레 토요판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365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