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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하게 찔린 주검 자꾸 떠올라 그때 수습 못해준 게 평생 걸려”

등록 2020-05-13 05:01수정 2020-05-13 07:10

[5·18 40돌 기획] 다섯개의 이야기-④참회
80년 5월 계엄군으로 광주 출동 정현수씨
총도 쏘지 않고 누구 하나 때리지 않았지만
처참한 주검 목격하고 평생 죄책감 시달려
20사단 60연대 소속으로 1980년 5월 광주에 왔던 육군 일병 정현수씨가 8일 전남 영광의 박관현 열사 동상을 찾아 추모하고 있다. 안관옥 기자
20사단 60연대 소속으로 1980년 5월 광주에 왔던 육군 일병 정현수씨가 8일 전남 영광의 박관현 열사 동상을 찾아 추모하고 있다. 안관옥 기자

“차라리 탈영했더라면….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1980년 5월27일, 전남도청 진압작전에 동원된 계엄군 2만여명 가운데는 20사단 60연대 91대대 운전병이었던 육군 일병 정현수(62)씨도 포함돼 있었다. 스물두살이던 그는 계엄령 발동 뒤 경희대에 주둔하다,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직후 광주로 이동했다.

“성남비행장에서 난생처음 수송기를 탔어요. 탑승 직전 실탄 280발, 최루탄 2발을 분배받았죠. 전쟁이 났다고만 생각했어요. 소대원 중에 어디로 가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어요.”

도착하고 보니 광주였다.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광주 일대에서 운전사로 일하다 입대한 그였기에 비행장 바깥 거리가 낯익었다. 27일 새벽 광주시내로 이동해 전남도청 상무관 앞에 내리는데, 가마니에 덮여 있는 주검 20~30구가 눈에 들어왔다. 처참한 모습에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금남로~광주천 사이 도심 경계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눈 뜨고는 못 볼 것’을 봐야만 했다.

“금남로4가 중앙극장 앞에 복부와 가슴을 찔린 40대 여성의 주검이 있었어요. 덮어놓은 가마니가 한쪽으로 벗겨져 상반신이 드러났지요. 그때 수습해주지 못한 일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어요.”

부대원과 순찰하다 황금동 콜박스(경찰초소) 앞에서도 주검 대여섯구를 더 목격했다. 가슴 떨리는 기억이었지만, 함께한 부대원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인들을 빠짐없이 검문검색했다. 간호사와 전화교환원 등 여성들에게도 “전화가 끊겨 첩자끼리 쪽지로 통신한다”는 이유로 몸수색을 하고 손가방을 바닥까지 뒤졌다.

“우리를 바라보던 그 싸늘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행여 얼굴을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두려웠어요. 군복을 입고 있는 게 너무 불편했죠.”

오월 광주에서 총 한방 쏘지 않고, 누굴 패지도 않았지만, 이후 내내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부대 복귀 때 태극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부대 주변 시민들을 보며 ‘잘한 거 하나도 없는데 왜들 저러나’ 싶었던 그는 광주에서 온정적인 자세를 보였다는 이유로 부대 안에서 따돌림과 해코지 대상이 됐다.

정현수(가운데)씨가 군복무 중인 1982년 3월 부대원들과 찍은 사진. 정현수씨 제공
정현수(가운데)씨가 군복무 중인 1982년 3월 부대원들과 찍은 사진. 정현수씨 제공

82년 제대 뒤엔 광주 광산에서 화물차를 몰았다. 일감이 많았고, 결혼해 가정도 꾸렸다. 그날의 출동은 이제 잊은 듯했다.

“어느 날 전남도청 앞 로터리를 도는데 퍼뜩 그 장면이 되살아났어요. 금남로 중앙극장, 수기동 일등여관 부근을 지나도 어김없이 기억이 떠오르고요.”

그런 날엔 일하기도 싫었다. 잊기 위해 입에 댄 술의 양은 자꾸만 늘었다. 나중에는 술 없이는 잠을 이룰 수가 없을 정도가 됐다. 90년대 들어 그 시절 광주에 있었던 군인의 죄책감을 다룬 방송을 보며, 생방송 중인 방송사에 전화를 걸어 목격담을 이야기했다. 소속과 이름을 밝힌 것이 화근이었는지, 양복쟁이들이 집 부근을 맴돌았다. 정씨는 바로 서울로 올라가 가지고 있던 화물차를 팔고 경기번호 화물차를 다시 산 뒤 강원~부산을 오가는 일을 했다. 몇달 뒤 광주로 돌아왔지만 외로움은 술을, 술은 외로움을 부를 뿐이었다. 어느덧 가족들마저 곁을 떠났다.

“내가 이상한 놈인가? 정신과에도 갔어요. 일주일치 약을 먹고는 다시 안 갔지.”

몇년 전 영화 <택시운전사>를 봤다. 평생 운전을 생업으로 살아온 그한테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나드는 주인공의 분투는 참담한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수면제 4알은 있어야 잠들 수 있는 5월이 오면, 집에서 3㎞ 떨어진 박관현(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 열사 동상을 찾아가곤 한다. 소주도 따르고 잡풀도 뽑으며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한동안 운명을 한탄했죠. 이제는 받아들였어요. 속죄하며 살아야지요. 본 대로 다 말하고 산산조각이 난 삶을 다시 추스르고 싶어요.”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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