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22일 계엄군의 총을 맞고 사망한 이명진씨의 검시 보고서.
계엄군 총을 맞고 사망한 희생자 셋 중 하나는 얼굴이나 머리에 총탄을 맞고 목숨을 잃었다. 자위권이 아닌 고의에 의한 살상이라는 얘기다.
5·18유족회가 광주지검의 ‘변사체 검시보고’ 등을 바탕으로 분류한 ‘5·18 사망자 사인별 집계’를 보면, 당시 민간인 희생자 164명 가운데 총상으로 인한 사망이 125명으로 전체의 71%를 차지했다. 총상 사망자의 총상 부위는 △머리(31명) △안면부(10명) △경부(목·7명) △흉부(54명)가 대다수이다. 절반 이상이 목숨과 직결된 가슴과 머리 부분에 총탄을 맞은 셈이다.
5·18 민주화운동 때 시민을 진압봉으로 구타하는 계엄군. 5·18기념재단 제공
특히 이 가운데 22명(전체 총상 사망자의 17.6%)은 뒤에서 쏜 총탄에 맞아 희생됐다. 5월22일 광주교도소 앞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한 이명진(당시 38살)씨 검시서 부위별 사인엔 ‘좌후두부 맹관총창(뇌손상)’이라고 적혀 있다. 뒤통수 왼쪽 부분에 탄환이 박혀 숨졌다는 의미다.
소총 앞에 꽂혀 있는 대검 등에 의한 자상 희생자 가운데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민병열(당시 31살)씨는 5·18(일시, 장소 미상) 당시 ‘후두부(뒤통수) 자창 및 두부손상(두개골 골절)’으로 사망한 것으로 검시 보고서에 나와 있다. 택시운전사였던 민씨는 전남대 앞에서 공수여단 부대원들에게 끌려가 구금 상태에서 대검에 뒤통수 부분을 찔려 희생됐다.
계엄군의 진압봉과 개머리판 등에 맞아 사망한 희생자 14명 중 7명도 뒤에서 공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검시 기록을 보면 계엄군의 자위권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택시운전사 민병열씨는 5·18 당시 뒤통수 부위에 자창 흔적이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1980년 5월21일 사망한 장방환씨의 검시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