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안의 아이에게-5·18 가해자 헌정곡’이라는 노래를 작곡해 동영상으로 제작한 정찬영 병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찬영 병원장(50·광주 새미래병원)이 ‘우리안의 아이에게-5·18 가해자 헌정곡’이라는 노래를 작곡해 동영상으로 제작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가해자편에 섰던 군인·경찰들의 증언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노래다.
정 병원장은 18일 “전두환·노태우를 비롯한 ‘하나회’ 장성들, 계엄군 진압군, 고문 경찰관 등 적극적 혹은 수동적인 가해자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진실을 담은 증언을 하고 속죄할 수 있는 용기를 내라는 내용을 담았다”고 말했다. 전남대 의대 재학 시절 밴드활동을 하는 등 음악을 좋아하는 정 병원장은 색소폰 연주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는 노랫말도 직접 썼다. 그는 “가해자 중 일부라도 진실된 증언과 속죄가 있다면, 진실규명과 치유, 화해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안의 아이에게-5·18 가해자 헌정곡’ 동영상의 한 장면.
5분5초짜리 동영상은 소프라노 박성경이 청아한 음성으로 노래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죽음이 널 데려가기 전에/ 치매가 널 지우기 전에/ 기회의 문이 닫히기 전/ 속죄의 용기를 내’라고 촉구한다. 이재준이 부르는 랩 부분에선 ‘어릴 적 순수했던 너로 돌아가는 건 어때/ 총칼로 가족과 인생을 잃은 이웃들에게/ 참회는 무지개 다리/ 이젠 그 다리를 건널 때야’라는 내용이 있다. 동영상엔 계엄군 지휘관였던 가해자가 국립5·18민주묘지 유영보관소 등지를 찾아가는 장면을 통해 내면의 갈등을 담고 있다.
5·18 생존자와 가족들의 치유 프로그램 ‘마이데이’의 내용을 실은 기록집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습니까?> 책 표지.
정 병원장이 가해자의 증언을 촉구하는 노래를 만든 것은 5·18 생존자와 유족들을 만났던 인연과 관련이 있다. 그는 2013년부터 7년간 광주 트라우마센터에서 주관해 5·18 생존자와 가족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는 증언 치유 프로그램 ‘마이데이’를 진행해왔다. 센터는 정 병원장과 참석자들이 나누는 치유의 대화를 기록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습니까?>(2016)를 펴냈다.
1980년 5·18 당시 시민들을 진압봉으로 구타하는 계엄군. 5·18기념재단 제공
그는 “5·18진실 규명을 촉구하고 책임자를 법과 정의로 심판하려 싸우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가해자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이웃들에게 속죄할 수 있도록 돕는 이 또한 필요하다”며 “증언 치유의 무대에 가해자를 초대하고 싶은 의사의 마음을 노래와 영상에 담았다”고 말했다. “명령에 따라 가해자 편에 서 광주에 투입된 ‘보통의 군인’들도 역사의 피해자이죠. 어쩔 수 없이 가해자 편에 섰던 보통 군인들도 5·18 트라우마를 치유할 기회가 필요해요.”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정찬영 병원장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