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논객 지만원씨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침투한 북한특수군(1980년 당시 조명록 북한 공군사령관)이라며 2015년 11월 자신의 누리집에 게시한 사진. 실제 인물은 중학생 아들 박기현군의 관 앞에서 오열하고 있는 고 박동연씨다.5·18기념재단 제공
“아버지(고 박동연씨)는 먼저 세상을 떠난 늦둥이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려고 열심히 투쟁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북한군이라니요. 제발 유족들의 아픔을 헤집는 악의적인 주장은 그만뒀으면 합니다.”
5·18 때 계엄군의 구타로 숨진 박기현(당시 14살)군의 형 영현(61)씨는 2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극우논객 지만원(예비역 육군 대령)씨의 명예훼손사건 항소심 2차 공판을 하루 앞두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지씨는 2015년 11월 자신의 누리집에서 5·18 당시 전남도청에서 찍힌 박동연씨를 가리켜 “제151번 광수(북한특수군이라는 의미) 조명록(1980년 당시 북한 공군사령관)”이라고 주장했다. 박씨는 당시 곤봉에 맞아 온몸에 멍이 든 아들의 주검을 보고 오열하고 있었다. 지씨는 지난해 2월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지만 고령이라 법정 구속은 피했다. 지씨는 항소 뒤에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영현씨는 “아버지는 한평생 기현이의 명예를 되찾아주려고 투쟁하다 1990년 72살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지씨가 아버지를 북한군이라고 지목했을 때 화가 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지씨가 반성을 하지 않은 만큼 끝까지 법정 투쟁을 하겠다”고 말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총격으로 숨진 아들 이용충씨의 관 앞에서 울고 있는 김진순씨. 극우논객 지만원씨는 김씨를 북한 특수군(김정일의 처형 성혜량)이라고 주장해 고소당했다. 5·18기념재단 제공
5·18 때 계엄군의 총격으로 큰아들 이용충(당시 26살)씨를 잃은 김진순(92·여)씨도 이번 항소심 재판에 참여할 작정이다. 지씨는 2015년 9월 상무관에 안치된 아들의 관 앞에서 울고 있는 김씨 사진을 누리집에 올리며 ‘거짓통곡하는 김정일의 처형 성혜량(제162번 광수) 포착’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김씨는 1심 때 피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고령이어서 증인으로 출석하지는 못했다. 1심 재판부는 증거부족으로 김씨 명예훼손 부분에 무죄를 선고했다.
이용충씨 동생 정충(63)씨는 “5·18이 끝난 뒤 온 가족이 생계를 제쳐놓은 채 형님 주검을 찾아다니면서 고통이 시작됐다. 우리 가족은 한평생 가난에 시달리며 지금도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형님에게 많이 의지했던 동생 한명은 극단적 선택까지 했다. 위로는 못 해줄망정 어머니를 북한군이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 왜 어머니가 아흔살 넘은 나이에 서울 법원까지 가서 억울함을 밝혀야만 하느냐”고 분노했다.
5·18기념재단의 자료를 종합하면 지씨가 북한군으로 지목한 광주시민은 477명에 이른다. 박동연, 김진순씨를 포함해 남편 관 앞에서 울고 있는 심복례(78)씨, 유족을 위로하는 고 백용수 신부 등 무장투쟁과 무관한 시민들도 다수 북한군으로 지목당했다.
앞서 2012년 12월 대법원은 2008년 자신의 누리집에서 ‘5·18은 북한이 일으킨 폭동’이라고 주장해 기소된 지씨에 대해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전두환씨도 2017년 펴낸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했지만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내용에 대해서만 처벌(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받았다.
다만 민사재판에서는 5·18단체가 여러차례 승소했다. 지씨가 북한군 개입설을 담은 <뉴스타운> 호외와 화보를 2015년 7월과 2017년 2월에 걸쳐 발간하자 5·18단체는 손해배상을 제기해 2억2200만원을 배상받았다. <전두환 회고록>에 대해서도 광주지법 민사재판부는 2018년 9월 전씨가 5·18단체에 7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해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지씨가 지난해 6월 출간한 도서 <북조선 5·18아리랑 무등산의 진달래 475송이>는 지난달 법원으로부터 출판 및 판매 금지 명령을 받았다.
정인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 부지부장은 “악의적으로 5·18을 왜곡해도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으면 법적 제재를 할 수 없는 상황을 고려해 ‘5·18 허위사실 처벌법’(5·18특별법 개정안)이 만들어졌다. 5·18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