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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인 명부·형무소 편지·희생자 결정서…기록물에 담긴 ‘제주 4·3’

등록 2023-04-03 10:00수정 2023-04-03 10:35

제주4·3 시기 통학증명서와 석방증. 제주4·3평화재단 제공
제주4·3 시기 통학증명서와 석방증. 제주4·3평화재단 제공

지난 2021년 제주4·3평화기념관 2층 전시실 중앙에 총리실 산하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4·3 희생자로 결정한 1만4천여명의 ‘제주4·3사건 희생자 및 유족 심의·결정 요청서’가 전시됐다. 제주4·3특별법 제정 이후 당시까지 결정한 희생자 1만4532명의 심의·결정 요청서가 45개 ‘기록의 탑’으로 쌓인 것이다. 여기엔 2001년부터 2005년까지 결정된 희생자들의 인적 사항과 사건의 개요 등이 담겼다. 심의·결정 요청서는 전시실의 중앙홀을 가득 메웠다. 희생자 및 유족 신고서는 희생자 1인의 희생 경위를 담은 개별 기록이자 사건의 참혹함을 증언하는 총체적인 기록이다. 이 기록만으로도 4·3의 규모와 비극성을 알 수 있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는 대표적인 ‘4·3 기록물’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본다.

■ 석방증·통행증

4·3 시기 당국은 각종 증명서를 발급했다. 이 증명서는 삶과 죽음을 갈라놓는 쪽지였다. ‘선량한 백성’이라는 의미가 담긴 ‘양민증’이 없으면 폭도가 됐고, 밖에 나다닐 수가 없었다. 학생은 학교가 발행하는 ‘통학 증명서’가 있어야 했다. 1948년 4월 발급한 이 증명서에는 성명과 나이, 학년과 반, 주소와 함께 통학 구간까지 적혀 있었다. 이 증명서를 기증한 부원휴(93)씨는 “집에서 학교까지 1시간 정도 걸리는데 검문이 심해 통학 증명서를 발급받았다. 통학 증명서와 학생증을 제시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증명서는 ‘석방 증명서’다. 이 증명서에는 ‘서명인은 미국인과 조선인 합동 취조를 1948년 6월23일 종료 석방함’이라고 적혀 있다. 당시는 6·23 재선거가 무기 연기된 뒤 중산간 마을 주민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작전이 벌어지던 때였다. 미군이 함께 심문을 진행한 것은 당시가 미군정 시기였음을 보여준다.

1948년 11월17일자 계엄령 문건. 제주4·3평화재단 제공
1948년 11월17일자 계엄령 문건. 제주4·3평화재단 제공

■ 계엄령 문서

1948월 11월17일 이승만 정부가 대통령령 제31호로 공포한 ‘제주도지구 계엄 선포에 관한 건’이란 문서에는 “제주도의 반란을 급속히 진압하기 위하여 동 지구를 합위지경으로 정하고 본령 공포일로부터 계엄을 시행할 것을 선언한다. 계엄사령관은 제주도 주둔 육군 제9연대장으로 한다”고 돼 있다. 이 계엄령을 계기로 제주도는 ‘통곡과 죽음의 섬’이 됐다. 이해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제주도 중산간 마을들은 초토화됐고, 수많은 도민이 학살되고 국가폭력에 노출됐다. 미군 정보보고서(1949년 4월1일자)는 “9연대는 중산간 지대에 있는 마을 주민들이 무장대에 도움과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가정 아래 민간인들에 대한 대량학살 계획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계엄령은 계엄법 이전에 공포돼 ‘불법성’ 논란이 일었고, 법원은 최근 수년 동안 진행된 4·3 희생자들에 대한 재심 재판을 통해 계엄령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희생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제주4·3 시기인 1948년과 1949년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진 군사재판 ‘수형인 명부’ 제주4·3평화재단 제공
제주4·3 시기인 1948년과 1949년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진 군사재판 ‘수형인 명부’ 제주4·3평화재단 제공

■ 수형인 명부

1999년 9월 당시 추미애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이 정부기록보존소(현 국가기록원)에서 4·3 당시 2530명의 직업, 이름, 본적, 항변, 판정, 판결, 언도 형량, 언도 일자 등이 적힌 ‘수형인 명부’를 발굴하면서 알려졌다. 4·3 시기 ‘불법’ 군사재판은 1948년 12월과 1949년 6~7월 두 차례에 걸쳐 있었다. 체포되거나 당국의 귀순 권고로 귀순한 이들은 제주주정공장 등에 수용돼 고문과 취조를 받고 수십명씩 한꺼번에 재판정에 나가 ‘재판 아닌 재판’을 받고 육지 형무소로 이송됐다. 형무소로 이송된 이들은 자신의 형량과 죄명도 몰랐다. 당시 군사재판은 판결문과 조서 등 재판의 기본적인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사실이 드러났고, 2017년 이후 지금까지 4·3 재심 재판을 통해 당시 희생자들이 무죄 판결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은 4·3 희생자는 모두 1200여명에 이른다.

제주4·3 시기 형무소에서 보낸 엽서들. 제주4·3평화재단 제공
제주4·3 시기 형무소에서 보낸 엽서들. 제주4·3평화재단 제공

■ 형무소에서 보낸 엽서

“형님과 늙으신 어머님, 처자식의 소식을 듣고 싶사오니 속히 답장하여 주십시오. 할 말은 태산같이 있어도 그만 그칩니다.” 1949년 2월11일 제주읍 삼도리 출신 문숙현은 군사재판을 받고 수감 중인 대구형무소에서 어머니한테 이런 엽서를 보냈다. ‘할 말은 태산 같았지만’ 다 하지 못했다. 문숙현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년 7월 학살됐다. 군사재판을 받고 육지 형무소로 끌려간 이들 가운데는 제주도의 가족들에게 몇 차례의 엽서를 보내기도 했으나, 한국전쟁 직후 대부분 행방불명됐다. 엽서는 형무소 검열인과 ‘군 검열’도 확인된다. 엽서 내용은 주로 집안 어른들이나 식구들에 대한 안부를 묻는 내용이 많다. 자식의 혼사, 부모의 건강 걱정, 딸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보고 싶다는 내용도 있다. 어떤 이들은 소나 말을 잘 관리해달라고 했고, 조밭 파종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절절한 내용이 담긴 엽서를 통해 군법회의 수형인들의 형무소 이동 경로도 파악된다.

1960년 국회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제주4·3평화재단 제공
1960년 국회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제주4·3평화재단 제공

■ 국회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보고서

4·19혁명 직후인 1960년 5월 국회는 한국전쟁 당시 무고한 양민 학살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4·3 당시 제주도경찰국장을 지낸 최천 단장을 포함한 3명의 조사단이 제주도에 체류한 시간은 6시간에 불과했다. 그러나 제주도민들의 진실규명 요구는 뜨거워 <제주신보>가 이들의 방문을 앞두고 단기간 접수한 결과 1800여명의 희생자가 신고 접수됐다. 조사 당시 4·3이 끝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양민학살 진상규명 신고서’는 인적 사항은 물론 학살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있으며, 일부는 처벌을 요구하는 내용도 있다.

■ 제주도의회 4·3피해조사 보고서

제주도의회는 1993년 3월 4·3특별위원회를 구성한 이후 4·3 피해자를 접수하고, 증언과 피해 지역 등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이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3차례에 걸쳐 <제주도의회 피해조사서>를 수정·보완해 발간했다. 최종적으로 1999년 12월31일자로 피해 접수 상황을 정리한 결과 피해자 수는 모두 1만4841명이고, 이 가운데 피해신고서를 받은 인원은 1만2243명, 미신고자는 2598명으로 집계됐다. 제주도의회의 피해신고서는 피해자의 이름과 가족관계, 피해 상황 등을 적도록 했다. 이 신고서는 제주4·3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회 청원 당시 주요 문서로 제출됐다.

2003년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 주민들이 세운 영모원. 제주4·3평화재단 제공
2003년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 주민들이 세운 영모원. 제주4·3평화재단 제공

■ 화해·상생의 상징

영모원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 주민들이 2003년 3월 세운 위령비이다. 항일운동가와 4·3 희생자, 군·경 희생자 신위를 한곳에 모셔 추모하는 곳이다. 이 영모원은 주민들 스스로 토론하고 준비해 세웠다. 4·3 시기 군·경 희생자와 일반 희생자를 한곳에 모아 넋을 기렸다. 추모 화해와 상생의 표본으로 평가된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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