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대구시 북구 칠성시장의 상인들이 ‘개’, ‘개고기’라는 글자를 가린 채 영업하고 있다.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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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법으로 뭐라 안 해도 저절로 다 없어집니더. 보소, 손님들도 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 아입니꺼.”
10일 낮 대구시 북구 칠성시장에서 만난 식당 종업원이 삶은 개고기를 손질하며 볼멘소리를 했다. ‘칠성개시장’으로 불리는 이곳은 전국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개시장이다. 식당 안에선 70~80대 노인 여남은 명이 보신탕을 먹고 있었다.
식당들은 ‘개고기’, ‘개소주’라고 적힌 간판을 종이로 가리거나, ‘개’ 자에만 불투명 테이프를 붙인 채 영업하고 있었다. 식당이 밀집한 한 건물에는 임대를 알리는 펼침막이 여러 곳에 걸려 있었다. ㅇ건강원 사장 이아무개(70)씨는 “구청에서 개고기 글자를 감추는 게 좋겠다고 해서 임시변통으로 가렸다. 개고기도 가게 밖에 내놓지 말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18년째 개를 키우는데, 윤석열이 키우는 개랑 (식용으로) 잡는 개랑은 완전 다르다. (대통령) 잘하라고 뽑아줬더니만 시키지도 않은 엉뚱한 짓만 해서 미워죽겠다”고 했다. 그는 “협조할 수 있는 부분은 해주지만, 장사는 우리 생계다. 절대 그만 못 둔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 10일 대구시 북구 칠성개시장, 손님들이 보신탕 가게를 찾고 있다. 김규현 기자
현재 국회에는 개 식용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특별법안 4건이 상임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사육·증식·도살하거나 개를 사용해 만든 음식물 또는 가공품을 취득·운반·보관·판매하는 등의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업종을 변경해야 하는 시장 상인들은 생계가 막막하다. ㅇ건강원 업주 김아무개(75)씨는 “(개 식용 금지) 법이 통과되면 우리는 따를 수밖에 없지만,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 최소한 1~2년 다른 생업을 찾을 때까진 생계비 지원을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대구시 북구 칠성시장의 상인들이 ‘개’, ‘개고기’라는 글자를 가린 채 영업하고 있다. 김규현 기자
지난 10일을 기준으로 칠성시장에서 식용 개를 파는 곳은 모두 14곳. 보신탕 업소가 5곳, 건강원이 9곳이다. 대구시는 2021년 도살장 2곳을 모두 폐쇄하고, 개를 가둬두고 현장에서 잡아 파는 ‘뜬장’도 모두 폐쇄했다. 권영진 전 대구시장이 칠성시장 폐쇄를 공약한 뒤 폐쇄에 탄력이 붙는 듯했지만, 폐업 뒤 보상 문제가 불거지면서 갈등이 폭발했다. 시는 아직까지 상인들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7월 초복을 앞두고선 대구생명보호연대 등 동물권 단체들이 칠성개시장 폐쇄를 요구하는 시민 3천여명의 서명 탄원을 대구시에 제출하기도 했다.
대구시 농산유통과 관계자는 “시는 개시장이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대구시가 준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에 맞춰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개시장은 2016년 경기도 성남 모란시장, 2019년 부산 구포시장 개시장이 폐쇄되면서 현재 대구에만 남아 있다. 칠성시장은 한때 개고기를 파는 업소가 50여곳에 이를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