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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잃어버린 새벽잠은 되찾을 수 없다

등록 2021-07-09 05:00수정 2021-07-09 10:41

[책&생각] 정인경의 과학 읽기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수면과 꿈의 과학
매슈 워커 지음, 이한음 옮김/열린책들(2019)

우리는 평소에 잠의 가치를 잊고 산다. 불면증과 같이 수면 장애로 고통받기 전까지 잠의 중요성을 실감하지 못한다. 깨어 있어야 할 이유가 살아가는 이유이기 때문에 잠은 언제나 삶의 목표를 위해 희생되었다. 어떻게든 잠을 적게 자려고 안간힘을 쓰며 성과에 매달리는 것이 보편적인 사회정서가 되었다. 신경과학자 매슈 워커는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에서 이러한 현대 사회의 수면부족 현상을 과학적으로 비판한다. 그리고 “이 책은 잠의 문화적 가치를 제대로 인식시키고, 잠을 소홀히 하는 태도를 바꾸기 위해 썼다”고 밝히고 있다.

매슈 워커는 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진다. 생명체에게 잠은 무엇일까? 지구 환경에서 생명체가 출현할 때 잠도 함께 출현했다. 지구의 모든 동물은 잠을 잔다. 죽음을 ‘깊은 잠’에 비유하지만 잠은 생명활동 중 하나다. 잠자는 동안 우리 뇌는 깨어 있다. 잠은 진화의 과정에서 생명에 필수적인 기능들을 위해 고안된 장치다. 과학은 잠이 “죽음에 맞서서 대자연이 최선을 다해 내놓은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인간이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는 것은 생물학적 명령이다. 먹지 않으면 죽는 것처럼 잠을 자지 않으면 죽는다.

우리는 꼬박 밤을 새우고 잠을 몰아서 자기도 한다. 이것은 하루종일 굶다가 다음날 폭식하는 것과 같다. 매일밤 잠을 줄이는 것은 서서히 식사량을 줄이는 것과 같이 건강을 해친다.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뇌 안에 노폐물이 쌓이는데 하루 8시간 이상 충분히 자야 노폐물이 말끔히 청소된다. 잠을 줄이면 뇌에 노폐물이 갚지 못한 은행 빚처럼 남아 있다. 문제는 만성 수면 부족으로 쌓인 노폐물을 모두 털어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회복할 기회를 주어도 뇌는 잃어버린 잠을 다시 보충하지 않는다.

인간은 진화의 과정에서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수면의 질을 높여왔다. 다른 동물들은 인간보다 훨씬 오래 잔다. 우리는 잠자는 8시간을 아까워하지만 그 8시간의 잠을 압축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인간다워졌다. 특히 꿈꾸는 단계의 렘(REM: Rapid Eye Movement) 수면은 인간의 사회적 지능과 인지 능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깊은 잠인 비렘수면이 노폐물을 청소하고 새로 학습된 정보를 기억보관소에 저장하는 일을 한다면 렘수면은 정보들 사이에 새로운 연결을 형성하고 정보 연합망을 구축한다. 이 책에서 매슈 워커는 렘수면의 기능을 강조한다. 인간은 수면시간의 20~25퍼센트를 렘수면에 할당하며 정서적 회복과 기억 연합, 창의성 등을 획득했다고 한다. 그는 “매일 우리 감정을 조절하는 냉철한 능력, 우리가 정서 지능이라고 부르는 것의 핵심은 매일 밤 렘수면을 충분히 취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만약 새벽에 평소보다 2시간 일찍 일어날 경우 수면시간의 25퍼센트를 잃은 것이 아니다. 렘수면이 통째로 날아간 것이다.

한국인의 수면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 최하위다. 코로나19 이후에 수면시간이 더욱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제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수면시간의 증가를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새벽잠을 푹 잘 권리가 있다. 과학을 현실에 적용한다면 새벽배송이나 총알배송과 같은 배송 경쟁이야말로 시급히 없어져야 할 것들이다.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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