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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모래 농장의 오두막에서 탄생한 ‘땅의 윤리’

등록 2023-03-10 05:00수정 2023-03-10 10:32

샌드 카운티 연감
자연은 스스로 조화롭고 이제 우리의 결정만 남았다
알도 레오폴드 지음, 이동신 옮김 l 이다북스(2023)

알도 레오폴드(1887~1948)는 미국 환경운동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샌드 카운티 연감>은 거의 1세기를 버티며 그의 흔적을 영구히 남겼다. <모래 군의 열두 달>이란 이름으로 환경 관련 서적에 인용되는 것을 볼 때마다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최근에 나온 <야생 쪽으로>는 영국의 넵 사유지를 다시 야생화하며 레오폴드를 예언자처럼 따른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나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에 비견되는 생태학의 고전이 우리 곁에 너무나 뒤늦게 당도했다.

레오폴드는 레이철 카슨과 동시대에 살았다. 20세기 초반 미국은 광대한 영토와 자연 자원을 개발하며 산업화에 매진하고 있었다. 레오폴드와 카슨은 국토 개발과 자원 보호를 위한 정부 기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레오폴드는 산림국에서, 카슨은 어류 및 야생동물국에서 연구경력을 쌓았다. 이들이 마주한 고민은 국가 발전과 경제적 이익을 명목으로 자연이 점점 망가져가는 것이었다. ‘자연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과 ‘보존하는 것’이 서로 조화를 이루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레오폴드의 인생은 실용주의자에서 보존주의자로 나아갔다. 그는 1920년대 국립야생보호구역을 지정하는 정책 과제에 참여하며 야생 보존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자연환경을 ‘상품’으로만 보는 사람들에게 야생과 보존의 개념을 정의하고 그 가치를 설파하기 위해서는 철학적 탐구가 절실히 필요했다. 1930년대 위스콘신대학 농경제학과로 자리를 옮긴 레오폴드는 근처 강가 수목지대에 모래 농장을 샀다. 수년 동안 닭장을 개조한 오두막에서 살며 자연 에세이를 썼는데 이것이 <샌드 카운티 연감>이다. 1948년 옥스퍼드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갑자기 일주일 만에 레오폴드가 숨을 거두는 바람에 이듬해에 책이 출간되었다.

<샌드 카운티 연감>은 레오폴드가 새벽 산책을 하며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을 기록한 책이다. 어느 페이지를 열어도 새벽 공기 내음이 나고, 새소리가 들리고, 야생화가 핀 들판이 눈앞에 펼쳐진다. 마지막에 1970년대 환경운동가들에게 영감을 준 ‘땅의 윤리’가 실려 있다. 야생의 아름다움을 공들여 설명한 문장들은 땅의 파괴에 부당함을 느끼는 윤리의식에 닿는다. “땅에 대한 사랑과 존경과 감탄 없이, 땅의 가치에 대한 존중 없이”는 “생태적 양심”이 생겨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야생의 아름다움만큼 윤리적 용기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다. 땅과 인간은 하나의 생명 공동체이기에, 문화적이고 심미적 가치를 지닌 땅을 보존하는 것은 인간의 고결함을 지키는 일이었다.

“적절한 땅의 사용이 오직 경제적인 문제라는 생각을 멈춰라. 매번 질문을 경제적으로 편리한 것이 무엇인지에 더불어 무엇이 윤리적이고 미학적으로 옳은 것인가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라. 생물권 공동체의 완전함, 안정성, 아름다움을 보존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옳다. 그렇지 않다면 옳지 않다.” “땅의 윤리는 호모 사피엔스의 역할을 땅 공동체의 정복자에서 그 공동체의 평범한 일원이자 시민으로 변화시킨다.”

이렇게 레오폴드는 보존주의자에서 환경주의자로 다시 한 발 내딛는다. 인간을 위해 다른 생물종을 보호하는 ‘보존주의’의 한계를 깨닫고,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는 ‘환경주의’의 사상을 품는다. 이제 카슨의 <침묵의 봄>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왜 레오폴드가 등장하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정인경/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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