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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출판계 선수들의 ‘찐사랑’ 만화책

등록 2021-08-07 09:27수정 2021-08-07 10:23

[한겨레S] 주일우의 뒹굴뒹굴 만화
중쇄를 찍자

“부상을 입어 더 이상 올림픽 메달을 노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커다란 목표를 잃었을 때 진지하게 생각했습니다. 난 뭘 하고 싶은 걸까?”

팬데믹 속에서 엉거주춤 진행되고 있는 도쿄올림픽의 선수 인터뷰가 아니다. 출판사에 취직하려는 편집자 지망생이 면접에서 한 말이다. “세계 공통 언어인 만화를 만드는 데에 참여해서, 전세계에 사는 모두를 두근거리게 만들고 싶습니다.” 출판사에 갓 입사한 코코로는 작가들, 동료들과 함께 책을 만든다.

책을 만들려면 ‘이야기’가 필요하다. 선배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림을 예쁘게 그릴 수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있어. 새로운 그림도 시간이 지나면 낡게 돼. 필요한 건 ‘이야기’를 만드는 힘, 상상력이지. 혼자의 힘으로 자신의 세계를 개척해 가는 거야.” 그렇다고 작가 혼자 독자에게 다가갈 ‘이야기’를 완성하는 일은 드물다. “자유롭게 두면 작가는 그리고 싶은 장면만 그린다. 그리고 싶지 않은 수수한 컷이 쌓이고 쌓여서 겨우 도달하는 게 이야기다. 그리는 사람의 괴로움은 독자의 기쁨과 비례하는 법이야.” 이야기의 전개가 벽에 막혔을 때, 독자들과 소통에 실패했을 때, 편집자는 작가가 진 무거운 짐을 나누어 지고 침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편집자는 작가와 함께 숨을 쉰다. 그래서 코코로는 그림이 망가져 포기하려는 작가에게 이런 조언을 할 수 있었다. “선생님과 처음 만났을 때 등이 많이 굽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사진에선 다르더군요. 연세 탓에 등 근육이나 복근이 약해져서 자세가 앞으로 기울어지셨어요. 바뀐 시점에서 옛날처럼 그리시니, 평면 인쇄를 하면 일그러져 보이는 겁니다.” 그래도 조심스럽다. 섣불리 끼어들었다가 작가의 페이스가 무너져 이야기가 멈춰지면 안 된다. 절대로 틀려선 안 되는 사실을 최대한 확실하게 짚어서 조사하고 또 조사하고 확인한다. 무례한 간섭을 해서는 안 되지만, 틀린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작가와 편집자, 둘만 잘한다고 책은 완성되지 않는다. 인상적인 표지도 필요하고 종이도 실이나 풀로 묶어야 한다. 종이에 대한 작가의 요구가 까다로울 수도 있다. “색 표현이 좋고 빛반사가 없었으면 좋겠어. 손가락에 잘 붙고 부드럽게 원래 위치로 돌아와야 해.” 종이 전문가와 상의해서 종이를 골랐는데 인쇄한 색이 마뜩잖다. 인쇄 전문가는 문제를 바로 알아차린다. “색깔이 표현될 때, 파란빛이 부족하네. 작가가 원하는 파란색을 내려면 청록을 조금 강하게 조정해야 해. 투명감을 내고 싶다니 파란색 잉크는 다른 회사 제품을 써야 하겠네.” 어떤 작가는 자기 작품에 맞는 서체를 특별히 만들어줄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내 책에 사용될 서체는 좀 더 촉촉하고, 멀리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의 느낌을 살릴 수 있었으면 해.” 점입가경. 편집자는 서체 디자이너와 또 머리를 맞댄다. 서체는 잘 읽혀야 하고, 눈에도 잘 띄어야 한다. 아름답고 공공성이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사람의 감정을 방해해서도 안 되고 글자를 문자로 느끼게 해서는 이야기를 방해할 수도 있다. 복잡하더라도 거슬리지 않게. 물 흐르듯, 바람처럼.

숫자와 논리로 무장한 토론을 거쳐 몇 부 찍을지를 결정하는 것이나 만든 책을 서점에 둘 자리를 마련하는 것, 모두 전투처럼 치열하다. 한국에서 한 해에 만들어지는 책은 8만 종에 이르고 매대는 비좁다. 독자들의 눈에 띄는 것조차 하늘의 별 따기. 책은 이토록 어렵게 독자를 만난다.

만화애호가

격주에 한번,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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