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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새해엔 희미한 희망이라도 품어야지…나비를 쫓는 마음으로

등록 2023-12-30 10:00수정 2023-12-30 10:32

[한겨레S] 주일우의 뒹굴뒹굴 만화

멸망한 세계에서 우리가 나비를 쫓는 이유

한 해가 끝날 때마다 엔트로피 법칙을 생각한다. 에너지를 쓰면서 유지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만물은 흩어지고 섞인다. 그 끝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고요한 상태일 텐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평형에 이르는 길 위의 요동 속에서 우리는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우주가 식어가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아직은 뜨거운 영역들이 생명을 품어준다는 것을 위안 삼아야 할까? 어차피 끝은 계산도, 상상도 어려운 곳에 있으니.

그저 눈에 보이는 태양 주위를 한바퀴 도는 시간을 1년으로 잡고 지구가 스스로 한바퀴 도는 시간을 하루로 잡아, 잡지 못하는 시간을 세어보는 정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시간이 흐르면, 세상은 얼마만큼, 얼마나 변할까? 한때, 미국 캘리포니아의 숲에는 제왕나비가 수백만마리나 살았다. 멕시코의 명절이자 축제인 ‘죽은 자들의 날’ 즈음,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제왕나비가 겨울을 나기 위해 멕시코로 돌아오는데 사람들은 이 나비를 죽은 자들의 영혼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이제 제왕나비의 99.9%가 사라졌다. 멸종 위기에 처했다.

비단 제왕나비만이 아니리라.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섞이고 사그라들겠지만 그 과정까지 가는 길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희망을 버릴 수 없다. ‘멸망한 세계에서 우리가 나비를 쫓는 이유’는 전세계에 살아남았다고 추정되는 사람의 숫자가 7500명인 세상의 이야기다. 인류의 99.9%가 사라지고 멸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 책에서 상상하는 인류 절멸의 시나리오는 태양과 심장이 주인공이다. 모든 동물의 심장 박동은 지문처럼 저마다 다르다. 포유류의 심장 박동은 포유류가 아닌 동물의 심장 박동과 확연히 구분된다. 2049년, 겨우 지금부터 25년 후에, 태양 표면의 변화로 강력한 전자기파가 지구에 닿았고 포유류의 심장 시스템이 망가졌다. 심장은 전기 신호로 움직이는 장치니까. 땅속에서 전자기파를 피했던 사람들만 살아남았지만 이들도 낮에는 활동을 할 수가 없다.

제왕나비 비늘을 이용해서 심장을 멈추는 전자기파에 맞서는 백신을 만들려는 과학자와 소녀. 밀크위드 나무는 상처가 나면 심장의 출력을 증가시키는 성분을 가진 진액을 분비한다. 진액에는 독성이 있는데 제왕나비는 독성을 이기고 성분을 농축한다. 나비가 농축한 성분을 이용해서 백신을 만든다. 제왕나비는 북미 대륙을 가로질러 남북을 오가는데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3세대를 지나고 4세대째는 슈퍼 제왕나비가 탄생한다. 슈퍼 제왕나비는 번식을 멈추고 부모세대보다 아홉배 길게 살면서 멕시코의 숲으로 날아간다. 이 제왕나비를 쫓아 이동하면서 백신을 완성하려는 이야기. 이미 99.9%가 사라진 제왕나비가 100년 후에도 살아서 인류를, 포유류를 구원할 물질을 줄 수 있을까?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욕망과 분쟁이 일어, 나비를 쫓는 일은 위태롭다. 백신을 만든다 한들, 99.9%가 사라진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의 전쟁은 해를 넘기고 세상은 열역학 법칙에 따라 어지럽게 식어간다. 하지만 생명은 자신의 힘이 닿는 대로 엔트로피의 법칙을 거스르는 존재. 흩어져가는 것들을 다시 붙들어 질서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운명이다. 나비를 쫓는 이유는, 우리가 희미한 희망이라도 마음에 품고 새해를 시작하려는 이유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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