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정인경의 과학 읽기
여성의 진화 : 몸, 생애사 그리고 건강
웬다 트레바탄 지음, 박한선 옮김 l 에이도스(2017)
“정말 궁금한 건 왜 알려주지 않는지 묻는 소녀들에게”, “이 책이 너의 사춘기를 더 쉽게 만들었으면 해.” 최근에 출간된 <소녀×몸 교과서>와 <여자 사전>은 이렇게 다정하게 사춘기 소녀들에게 말을 건넨다. 청소년기는 성장과 생식이 동시에 일어나는 혼란스러운 시기이다. 아이들이 과학적으로 몸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은 사춘기를 통과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나는 이 책들을 통해 청소년의 몸과 마음을 챙기는 성교육, 몸교육, 건강교육이 부족한 현실을 다시 돌아보았다. 우리 사회야말로 인간의 생애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포괄적 성교육’이 절실히 필요함을 깨닫는다.
생물인류학자 웬다 트레바탄이 쓴 <여성의 진화>는 여성의 몸과 생애사를 다룬다. 여성이 일생 동안 겪은 몸의 변화와 건강을 수백만년 동안 이뤄진 진화의 역사에 비추어 보았다. 먼저 진화의 가르침은 인체의 모든 기관이 완벽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의 형질이 개선되면 다른 하나가 나빠진다. 한 사람의 생애에서도 한정된 에너지와 자원을 가지고 생존과 번식이 줄다리기를 한다. 예컨대 성호르몬이 활성화되면 면역기능이 저하된다. 생존과 생식을 맞바꾸는 진화적 트레이드오프(trade-off)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몸은 진화적 거래와 타협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질병이나 식습관과 같이 삶에서 경험하는 생물학적, 사회문화적 사건은 내 몸을 변화시키고,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에 계속 전달된다.
“여성의 몸은 진화의 결과이자, 자라온 환경과 자원 상태, 일상적인 삶의 요인과 ‘삶의 경험’에 의해 좌우된다.” 이런 의미에서 21세기 현대 사회는 10대 소녀들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주지 못했다. 물질적 풍요와 에너지 과잉이 성장을 도울지 모르지만 생식에는 나쁜 영향을 주었다. 이른 초경으로 현대 여성은 평생 400회 이상의 생리를 한다. 구석기 시대에 여성의 생리 횟수가 100회 정도였던 것에 비해 현대 여성이 4배나 더 많이 하는 것이다. 여성의 몸은 이토록 잦은 생리를 하도록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여성 호르몬이 분비되면 난소와 유방, 자궁은 임신 준비를 위해 세포 분열을 한다. 호르몬 등락에 따라 세포가 자주 교체되다보니 발암성 세포 변이가 일어나고 유방암과 자궁암, 난소암의 발병률이 높아진다.
이 책에서는 현대 여성의 높은 호르몬 수치를 우려하고 있다. 임상의학에서는 ‘정상’으로 간주하지만 진화의학에서는 결코 ‘정상’일 수 없다. 웬다 트레바탄은 현대 임상의학에서 정상/비정상, 건강/질병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를 비판한다. 의학 교과서에서 나오는 정상적인 성숙이나 정상적인 사춘기, 정상 생리 주기 등은 가상의 개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과거 의학은 여성의 생식이 중단되는 폐경을 치료가 필요한 질병, “에스트로겐 결핍 장애”로 진단했다. 모든 여성이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을 비정상, 퇴행, 결핍으로 규정한 것인데 이러한 잘못된 사고가 여전히 여성의 몸을 재단하고 있다.
<여성의 진화> 마지막 부분에서 트레바탄은 소녀와 여성을 위한 건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청소년기에 얻은 지식과 생활 습관은 한 사람의 인생뿐만 아닌 인류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당신이 구한 생명은 당신의 자녀, 손주, 그리고 증손주들의 것이다.” 포괄적 성교육을 통해 이 이야기를 소녀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다.
과학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