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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도전받는 ‘아프리카 기원설’…“유라시아가 먼저다”

등록 2021-09-03 05:00수정 2021-09-03 10:23

독일·지중해서 발굴된 새 화석 주목
인류와 침팬지 공통조상 가능성
이동은 본성, 기후변화도 부추겨
멸종 인간종, 유전자 속 살아남아

역사에 질문하는 뼈 한 조각

인류의 시초가 남긴 흔적을 뒤쫓는 고인류학

마들렌 뵈메·뤼디거 브라운·플로리안 브라이어 지음, 나유신 옮김 l 글항아리사이언스 l 2만2000원

아프리카는 인류의 요람으로 불린다. 사람과 유전자의 98.7%가 같은 침팬지가 유일하게 사는 곳도, 사람의 가장 오랜 직계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화석이 나온 곳도 거기다. 700만∼1300만년 전 인간의 계보와 침팬지의 계보가 갈라진 뒤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진화하다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아프리카 기원설’은 말한다.

그러나 역사가 100년 가까운 고인류학 주류 이론에 최근 반론이 맹렬하다. 독일 튀빙겐대 고생물학자이자 고기후학자인 마들렌 뵈메는 가장 두드러진 도전자의 하나다. 그는 “인류 진화의 아주 중요한 과정은 아프리카가 아닌 유라시아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그가 주도한 연구진은 2019년 저명한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서 인류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인 직립보행을 한 대형 유인원이 아프리카보다 500만년 앞선 1200만년 전 유럽에 살았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이 독일에서 발굴한 ‘다누비우스 구겐모시’란 이름의 유인원은 팔로는 나무를 쥐었지만 쭉 편 다리와 에스(S) 자로 굽은 척추로 꼿꼿하게 걸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위는 원숭이 아래는 사람과 닮은 이 유인원은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조상 후보일지 모른다.

앞서 그는 2017년 그리스와 불가리아에서 발굴한 화석이 720만년 전 고인류 ‘그래코피테쿠스 프레이베르기’의 것이라고 주장해 고인류학계를 놀라게 했다. 이제까지 가장 오래된 고인류는 중앙아프리카 차드에서 발견된 700만년 전 사헬란트로푸스였다. 이보다 수십만년 앞서 아프리카가 아닌 지중해 일대에 인류의 조상이 살았다는 이야기다.

아프리카 기원설의 강점은 수천 점의 고인류 화석이 나왔다는 것이지만 인간과 현생 대형 유인원의 조상이 갈라진 뒤 초기 수백만년 사이의 것은 없다. 인류의 기원지라면 당연히 가장 오래된 화석이 나와야 할 터인데 정작 아프리카 밖에서 오랜 화석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뵈메 교수와 2명의 과학전문기자가 함께 집필한 이 책은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강타한 두 화석의 발견 이야기를 중심으로 고인류학의 연구성과와 쟁점 등을 일반인이 알기 쉽게 정리했다. 뵈메 교수팀은 이 책에서 고기후학과 고환경학을 토대로 아프리카 기원설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그는 이렇게 묻는다. “사자, 하이에나, 얼룩말, 코뿔소, 기린, 가젤, 영양 등 우리가 전형적인 아프리카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동물은 모두 유라시아에서 아프리카로 이주한 뒤 아프리카에만 있는 새로운 종으로 진화했다. (…) 아프리카 사바나의 동물상이 500만년 전 유라시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라면 선행인류(고인류)는 왜 이 규칙에서 예외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그는 이 책에 쓴 내용을 발전시켜 아라비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1000만년에 걸친 기후변화를 조사한 결과를 올해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지구 및 환경>에 발표했다. 아라비아에 정기적으로 극히 건조한 기간이 나타나 이를 피해 아프리카로 대피한 동물이 많았다. 특히 560만년 전부터 330만년 전까지 무려 230만년에 걸친 초 건조 기후가 펼쳐졌을 때는 아프리카가 고립돼 과거 유라시아에서 이주한 고인류를 포함한 대표적인 아프리카 동물이 고립돼 오늘날의 아프리카 동물로 진화했다는 주장이다. 지은이들은 또 중국 등 아시아에서 최근 잇달아 발견되는 고인류 화석과 도구,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의 키 작은 원인 ‘호빗’ 유골의 발견도 아프리카 기원설을 흔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책이 인류의 기원을 다룬 다른 고인류학책과 구별되는 건 ‘진화를 이해하는 데는 뼈만 중요한 게 아니라 환경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기후변화는 인류 진화의 물꼬를 튼 중요한 요인이다. 지중해는 한때 말라붙었고 아프리카보다 방대한 사바나가 유럽과 중동에 펼쳐지기도 했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 특성이 뭐냐는 질문도 독특하다(이 책의 원제는 ‘우리는 어떻게 인간이 되었나’이다). 지은이는 그런 특성으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려는 욕구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자유로운 손, 다른 동물에서 볼 수 없는 장거리 달리기 능력(달리기에 적합한 완벽한 해부구조와 최고의 냉각 장치, 생리적으로 최고의 에너지 효율), 불을 이용한 요리와 뇌 발달(고기보다는 전분의 기여), 사람을 연결한 언어 등을 꼽아 해설했다.

현재 사람은 사람과 사람속의 유일한 종이지만 30만년 전 처음으로 진화의 무대에 등장했을 때는 그렇게 외롭지 않았다. 유라시아에는 데니소바인, 네안데르탈인,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호모 에렉투스가 살았고 동남아 섬에는 호빗과 필리핀의 호모 루소넨시스가, 남아프리카에는 호모 날레디가 살았다. 그렇지만 약 4만년 전부터 호모 사피엔스는 행성에 남은 유일한 인간 종이 됐다. 이런 사태를 어떻게 봐야 할까.

지은이는 “호모 사피엔스는 한때 지구에 함께 살았던 다른 인간종들을 근절시켰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과 한데 합쳐진 것”이라는 타협책을 내놨다. 수많은 동물을 멸종시킨 인간이 무죄선고를 받지는 못하겠지만 냉정한 살인자라는 혐의를 피하자는 얘기다. 그 근거는 최근의 고 유전자 연구 결과 우리 유전체(게놈)의 2∼8%가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등 호모속의 다른 인간종들로부터 왔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외모와 행동 방식이 분명 달랐지만 다른 종과 성관계를 맺었고 유전정보를 넘겨받았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유전자는 각각 뇌와 뉴런의 기능과 뼈와 조직의 성장을 조절하는 게놈 영역에서 발견된다. 데니소바인 유전자 덕분에 고산증을 앓지 않는 티베트인처럼, 우리는 멸종한 인간종과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함께 살아 있는 셈이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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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질문하는 뼈 한 조각>이 인류의 기원을 다룬 다른 고인류학책과 구별되는 건 ‘진화를 이해하는 데는 뼈만 중요한 게 아니라 환경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과거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상도. 글항아리사이언스 제공

마들렌 뵈메. 글항아리사이언스 제공
마들렌 뵈메. 글항아리사이언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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