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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김수영…무의식의 힘을 믿은 그는, 온몸으로 시를 썼다

등록 2021-10-31 19:03수정 2021-11-01 12:26

[거대한 100년, 김수영] (23) 온몸
김수영에게 온몸은
‘혼신’과 같은 뜻 아닌
의식·의지·염두에
두는 것이 없는 것

금기 모르는 전위 예술의
근원적 반체제성 허용돼야
진정한 참여시 가능해
‘능금꽃’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는 김수영 시 ‘먼 곳에서부터’ 육필 초고. 우편 봉투의 뒷면에 적혀 있는 것으로,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김현경 제공
‘능금꽃’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는 김수영 시 ‘먼 곳에서부터’ 육필 초고. 우편 봉투의 뒷면에 적혀 있는 것으로,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김현경 제공

김수영이 몸에 대해 쓴 시들 중에서 가장 먼 곳까지 간 것은 ‘먼 곳에서부터’(1961)일 것이다. 김수영을 대상으로 한 최상급 연구서의 저자들도 이 작품에 주목했다. 이 시에서 ‘조용한 봄’, ‘여자’, ‘능금꽃’의 공통점을 간파한 저자는 이 시가 “무언가 새로운 것의 생성을 위한 고통”을 말하고 있다고 읽는다(김명인). 한편 이 시에서 부사 “다시”의 의미심장한 위상에 주목한 저자는 김수영이 시(詩)를 통해 시(時)를 사유한 결정적인 장면이 이곳에 있다고 읽는다(김상환). 내 눈에 밟히는 대목은 마지막 구절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아프다”. 내 몸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아플 수 있는가. 아니, 어쩌면 거꾸로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자기가 모르는 자기를 몸이라고 부른 것인가.

이후에 김수영은 ‘온몸’이라는 말을 우리가 잊을 수 없는 방식으로 사용하게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시여 침을 뱉어라’) 그래서 ‘온몸의 시인’ 혹은 ‘온몸의 시학’이라는 별칭이 그의 것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을 어떤 뜻으로 이해해왔나. 개인 김수영은 전후(戰後)의 시련과 설움을 정직하게 살아냈고, 시민 김수영은 4·19 혁명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참여했으며, 시인 김수영은 소재와 시어를 둘러싼 금기를 과감히 깼다. 방금 적은 문장에서 ‘정직하게’와 ‘열정적으로’와 ‘과감히’의 자리에 ‘온몸으로’를 쓰면 다 말이 된다. 이렇게 김수영의 삶이 ‘온몸’이라는 말을 제 쪽으로 자꾸 끌어당기기 때문에 끌려가듯 그런 정도의 의미로 사용해온 시간이 길다. 그러나 김수영의 ‘온몸’은 ‘혼신’(渾身)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김수영 시 ‘먼 곳에서부터’ 육필 초고.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김현경 제공
김수영 시 ‘먼 곳에서부터’ 육필 초고.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김현경 제공

앞서 인용한 문장 뒤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온몸’이 ‘그림자’를 의식/의지하지 않는다는 말은 꽤 비장하게 들린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가. 이 ‘그림자’에 대해 적절하게 말할 수 없다면 ‘온몸’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이 문장을 이해하려면 ‘시여 침을 뱉어라’(1968)만으론 역부족이고 그보다 1년 앞서 쓰인 ‘참여시의 정리’(1967)를 먼저 읽어야 한다.(1981년에 출간돼 20년 넘게 읽힌 김수영 전집 초판본에 이 ‘참여시의 정리’가 빠졌던 터라 ‘온몸’에 대한 초기 이해가 방만해지고 말았다.) ‘온몸과 그림자’(‘시여 침을 뱉어라’)는 ‘몸체와 그림자’(‘참여시의 정리’)로부터 뻗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시에 있어서는 의식의 증인이 없다. 그러나 무의식의 시가 시로 되어 나올 때는 의식의 그림자가 있어야 한다. 이 의식의 그림자는 몸체인 무의식보다 시의 문으로 먼저 나올 수도 없고 나중 나올 수도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동시(同時).”

프로이트적인 의미에서 무의식이란 ‘의식되지 않는’ 영역이니까, 무의식으로 시를 쓰는 공정에 의식은 참여할 수 없어야 맞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서, 여하튼 ‘시를 쓴다’는 자각 속에서 문장을 쓸 때, 의식은 슬며시 끼어들고 만다는 것이다. 이 진술의 옳고 그름보다 중요한 것은 김수영이 저 상황을 ‘몸체가 움직일 때 그림자도 따라가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대목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좋을 것이다. 김수영의 ‘몸과 그림자’는 특정한 지시 대상을 갖는다는 것, 그것은 바로 ‘무의식과 의식’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둘 중 더 중요한 것은, 아니 먼저인 것은, 무의식이다. 몸이 있어야 그림자도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이 구도는 다음과 같이 확대된다. 이제부터가 참여시 이야기다.

‘능금꽃’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는 김수영 시 ‘먼 곳에서부터’ 육필 초고.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김현경 제공
‘능금꽃’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는 김수영 시 ‘먼 곳에서부터’ 육필 초고.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김현경 제공

초현실주의 시대의 무의식과 의식의 관계는 실존주의 시대에 와서는 실존과 이성의 관계로 대치되었는데, 오늘날의 우리나라의 참여시라는 것의 형성 과정에서는 이것은 이념과 참여의식의 관계로 바꾸어 생각할 수 있다.”

‘몸과 그림자’에 비유할 만한 개념 쌍이 여럿 나왔다. 초현실주의에서는 무의식이 몸이고 의식이 그림자라면, 실존주의에서는 실존이 몸이고 이성이 그림자다. 사실은 앞의 것들(몸)이 더 중요한데 현실에서는 뒤의 것들(그림자)이 주인 행세를 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리고 여기가 중요한데, 김수영은 한국 시단에서 ‘이념’과 ‘참여의식’의 관계도 그와 같다고 본다. 이 대목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대체로 이념이란 의식의 소관이지 않은가. 그런데 왜 그는 ‘이념’을 무의식에, ‘참여의식’을 의식에 할당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그가 말하는 ‘이념’이 특정한 집단에 의해 ‘의식’적으로 추구되는 구체적인 이데올로기로 축소될 만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눈치 챌 수 있다.

<창작과비평> 1967년 겨울호에 실린 김수영 산문 ‘참여시의 정리’ 지면. 맹문재 제공
<창작과비평> 1967년 겨울호에 실린 김수영 산문 ‘참여시의 정리’ 지면. 맹문재 제공

그보다 더 큰 범주의 무엇, 이를테면 모든 전위 예술가의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이자 (이성이 아니라) 실존 그 자체인, 그러므로 ‘몸’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어떤 근원적인 반체제성을 그는 ‘이념’이라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가 이 ‘이념’이라는 것이 먼저여야 하는데, 그게 “외부적인 터부와 폭력”(같은 단락) 때문에 억압되고 있는 마당에, ‘참여의식’을 부르짖은들 무슨 소용이냐는 것. 그래서 그는 당시 쓰이던 것들이 기껏해야 “사이비 참여시”이거나 “참여시가 없는 사회에 대항하는 참여시”일 뿐이라고 탄식한다. 무의식으로서의 몸이 체현하는 이념은 궁극적으로는 “불가능이며 신앙”이 될 것이다. “이 신앙이 우리의 시의 경우에는 초현실주의 시에도 없었고 오늘의 참여시의 경우에도 없다.”

김수영의 ‘온몸의 시학’론이 전개된 산문 ‘시여 침을 뱉어라’가 실린 &lt;창작과비평&gt; 1968년 가을호 지면. 1968년 4월 부산에서 열린 펜클럽 주최 문학 세미나 발표 원고라는 사실이 적혀 있다. 맹문재 제공
김수영의 ‘온몸의 시학’론이 전개된 산문 ‘시여 침을 뱉어라’가 실린 <창작과비평> 1968년 가을호 지면. 1968년 4월 부산에서 열린 펜클럽 주최 문학 세미나 발표 원고라는 사실이 적혀 있다. 맹문재 제공

이 지점에 정확히 도착한 다음에야 ‘시여 침을 뱉어라’로 넘어갈 수 있고 또 넘어가야 한다. ‘시여 침을 뱉어라’의 도입부에서 김수영은 이렇게 못박는다. 정연한 시론은 정작 시 쓰기에는 도움이 안 된다고, 시를 쓰는 방법을 몰라야 시를 쓸 수 있다고 말이다. 당연하다. 그는 무의식의 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비유적으로 선언한다. “시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몸(무의식)으로 밀고 나가는 시 쓰기라는 이 발상을 초현실주의의 흘러간 레퍼토리쯤으로 치부하지 말고 우리가 한번도 도달해본 적이 없는 시의 경지를 상상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그 사용법에는 기억해둘 만한 두개의 디테일이 포함돼 있다.

김수영 산문선집 &lt;시여, 침을 뱉어라&gt; 1976년 중판 표지.
김수영 산문선집 <시여, 침을 뱉어라> 1976년 중판 표지.

이러한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첫째, 형식. 요컨대 시의 형식은 몸(무의식)의 소관이라는 것. 그는 1961년에 “형식은 ‘투신’만 하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것”(‘시작 노트 2’)이라고 쓴 적이 있다. 이때부터 시 쓰기와 몸 던지기는 그에게 이미 하나였다.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인용한 구절은 이 주장의 재확인일 뿐이다. 둘째, 사랑. 김수영은 다른 글에서 “자기를 죽이고 타자가 되는 사랑의 작업”(‘로터리 꽃의 노이로제’)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몸(무의식)으로 밀고 나가는 시 쓰기는 내 안의 타자를 발견하고 나를 새로 낳는 일이니 사랑의 작업이 맞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몸은 자신을 둘러싼 억압의 실핏줄들을 비로소 보이게 하고 그것과 싸우게 될 것이므로 이 ‘사랑’은 미시적 투쟁이지 달콤한 도피는 아니다. 이제 ‘온몸의 시학’의 클라이맥스로 가자.

1968년 부산에서 열린 펜클럽 주최 문학 세미나에 참석한 김수영(오른쪽 다섯째). 출처 &lt;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gt;(푸른사상)
1968년 부산에서 열린 펜클럽 주최 문학 세미나에 참석한 김수영(오른쪽 다섯째). 출처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푸른사상)

1968년 부산에서 열린 문학 세미나에 참석한 김수영(맨 왼쪽). 출처 &lt;김수영의 연인&gt;(책읽는오두막)
1968년 부산에서 열린 문학 세미나에 참석한 김수영(맨 왼쪽). 출처 <김수영의 연인>(책읽는오두막)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일에 그림자 따위는 필요 없다. 온몸은 무엇도 ‘의식’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으며, ‘염두’에 두지 않는다. 시인 자신은 의식적으로 무장된 실천적 지식인이어야 하되, 시를 쓰는 작업 자체는 그 의식에 얽매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무의식적 투신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런 종류의 시는 ‘문화와 민족과 인류를 염두에 두는’ 일반적인 의미의 참여시와는 그 출발점부터가 다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바로 그와 같은 온몸의 시야말로, 문화와 민족과 인류와 평화에 공헌하는, 진정한 참여시일 수도 있다는 것. 이제 우리는 이것을 ‘무의식적 참여시’라고 부르면서, 바로 이곳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신형철 조선대 교수, 문학평론가

신형철 평론가.
신형철 평론가.

먼 곳에서부터

먼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다시 몸이 아프다

조용한 봄에서부터
조용한 봄으로
다시 내 몸이 아프다

여자에게서부터
여자에게로

능금꽃으로부터
능금꽃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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