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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은 ‘바람의 시’ 굳게 단힌 세계를 여는 힘

등록 2021-11-22 04:59수정 2021-11-22 16:28

[거대한 100년 김수영] 26 풀
20일 뒤 세상 등져 마지막 작품 된 '풀'
풀과 바람의 관계 대립 아닌 상응
김수영 시 ‘꽃잎’ 육필 초고. 잡지 <자유공론> 봉투 뒷면에 쓴 것으로,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김현경 제공
김수영 시 ‘꽃잎’ 육필 초고. 잡지 <자유공론> 봉투 뒷면에 쓴 것으로,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김현경 제공

‘풀’은 김수영이 지상에서 쓴 마지막 작품이다. 1968년 5월29일, 그러니까 시인이 숨을 거두기 꼭 20일 전에 쓰인 이 시편은 김수영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현대문학> 8월호에 유고로 발표되었다. 누구는 이 작품을 김수영의 대표작으로 주저 없이 거론할 것이고, 누구는 김수영의 작품 가운데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난해작의 사례로 들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풀’은 김수영 시의 극점이자 귀결점으로 우리 앞에 우뚝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의 이 탁월한 유작(遺作)을 마주하면서,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역시 유작으로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대표작을 쓰고선 세상을 바로 등진 셈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예술적 정점은 죽음의 징후와 함께 오기도 한다. 도봉산 기슭 김수영 시비에 ‘풀’이 새겨진 것은 그 점에서 매우 자연스럽다.

외관상으로 보면 ‘풀’은 반복과 대구와 점층을 통해 특유의 리듬감을 성취하고 있는 작품이다. 소리 내어 읽어보면 금방 그것을 충일하게 느낄 수 있다. 시의 한 축을 이루는 ‘풀’은 ‘풀이/풀은/풀뿌리가’라는 주어의 형태로만 등장한다. 그 외에 주어는 ‘흐리다’라는 술어를 동반한 채 세번 나오는 ‘날이’뿐이다. 그런가 하면 시의 또 다른 한 축인 ‘바람’(동풍)은 ‘에/보다도/보다’ 같은 토씨를 거느리고서만 나타난다. 이러한 풀과 바람, 그리고 여러 동사들의 반복과 대구와 점층은 이 작품으로 하여금 단순하지만 여러 겹을 두른 한 편의 음악으로 태어나게끔 해준다. 이때 풀이 바람보다 늦게 눕고 울어도 먼저 일어나고 웃는다는 표현은 움직임의 선후 관계일 수도 있고 속도와 관련된 비교 관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리듬을 육체화하면서 풀은 눕고 일어서고 울고 웃는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축약하면, 이 작품은 흐린 날에 풀이 눕고 울고 일어나고 울고 웃고 궁극에는 눕는다는 통사론으로 남을 것이다. 물론 시의 군데군데 숨겨진 ‘드디어/더/다시’ 같은 부사들도 특유의 리듬감에 조연으로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행에 이르러 이 작품은 시작 부분과 수미상관처럼 연결되면서 어떤 질서가 항구적으로 순환하는 듯한 느낌까지 거느리게 된다. “거의 완벽한 언어경제”(김종철)를 구현한 김수영의 리듬감이 거둔 최종 최량의 성취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말하려면 ‘풀’과 ‘바람’의 관계를 반드시 해명해야만 한다. 그 둘 사이의 관계를 해독하는 것이 사실상 작품 이해의 키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바람을 억압의 힘으로 보고 풀을 억압에 저항하는 민초의 강인한 힘으로 간주하는, 말하자면 풀과 바람을 적대적 대립 관계로 상정하는 알레고리적 해석은 종적을 감춘 것 같다. 아니, 교육 현장에서는 여전히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이라는 주제가 굳건하게 반복 재생산되고 있으니까, 어쩌면 종적을 감추었다기보다는 학교 교육과 문학 연구가 현저하게 비대칭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연구자들이 아무리 새로운 해석을 제출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 학교 교육의 해묵은 관성은 ‘풀’에서 가장 선명한 사례를 보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작 시 안에서 풀과 바람은 어떻게 만나고 어떤 관계를 구축해가는가? 이 점에 대해서는 연구자들이 내놓은 한마디씩만 나열해도 이 지면이 차고 넘칠 것이다.

&lt;현대문학&gt; 1957년 12월호에 ‘봄밤’ ‘채소밭 가에서’와 함께 발표된 김수영 시 ‘광야’ 뒷부분. 맹문재 제공
<현대문학> 1957년 12월호에 ‘봄밤’ ‘채소밭 가에서’와 함께 발표된 김수영 시 ‘광야’ 뒷부분. 맹문재 제공

먼저 우리는 이 작품이 제목과는 달리 ‘바람’의 시이기도 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시인의 아내 김현경은 이 작품이 탈고되던 날에 바람이 몹시 불었다고 회상한 바 있다. 어쩌면 바람이 시의 직접적 동기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닌 게 아니라 김수영은 등단작에서부터 바람을 줄곧 불러왔다. “남묘 문고리 굳은 쇠 문고리/ 기어코 바람이 열고”(‘묘정의 노래’)라는 표현에서부터 김수영은 바람이야말로 굳게 닫힌 세계를 여는 힘임을 무의식적으로 스스로에게 각인하였다. 그 바람은 그의 시를 끝없이 관통하면서 세계를 개진해가는 근원적 힘으로 끝없이 파생되고 전이되어갔다.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절망’)에서처럼 신성한 기운으로 나타나기도 했고, “바람이 너를 마시기 전에”(‘채소밭 가에서’) 기운을 달라는 것처럼 우주를 삼킬 듯한 궁극적 에너지로 나타나기도 했다.

‘풀’에서 바람은 비를 몰아오는 존재로 먼저 나타난다. 비와 울음은 물의 속성을 동질의 원형심상으로 거느린다. 바람이 몰아온 비가 풀의 울음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간다. 바람이 비를 몰아와서 풀은 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람으로 인해 누울 수도 일어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바람 때문이 아니라 바람 덕분에 풀이 울 수도 누울 수도 있었다는 사실은 ‘바람-풀’이 처음에는 능동과 수동, 원인과 결과, 자극과 반응 관계로 시작한 것임을 알려준다. 그러다가 풀과 바람은 천천히 상응과 친화의 관계로 몸을 바꾸어간다. “풀 위에 그 바람이 있으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라는 동양 고전 <논어>의 한 구절이 이때 빈번히 인용되곤 하였다. 이제 풀은 바람의 흐름에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의 스케일과 속도와 존재방식을 얻어가는 과정적 존재로서의 자율성을 보여준다. 바람이라는 외인(外因)에 의해 수행된 움직임이 천천히 스스로 변화해가는 거대한 긍정의 과정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제 나는 광야에 드러누워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나를 발견”(‘광야’)했다고 노래하는 그의 품은 이러한 넉넉한 긍정에서 나온다.

&lt;현대문학&gt; 1967년 7월호에 발표된 김수영 시 ‘꽃잎’ 앞부분. 맹문재 제공
<현대문학> 1967년 7월호에 발표된 김수영 시 ‘꽃잎’ 앞부분. 맹문재 제공

너무도 당연하게 이 작품은 ‘민중들의 끈질긴 생명력’이라는 주제로 귀납되는 수렴형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통일된 주제의 압력으로부터 끊임없이 이탈하고 솟구치며 의미 확정의 요청을 거절하는 발산형의 작품이다. 산문적 언어로 번안되지 않는 거대한 생명의 원리와 질서를 노래하는 이 작품은 그 점에서 “자연은 바라보는 자연이 아니라 싸우는 자연이 돼서 더 건실하고 성스럽다”(‘반시론’)라는 자신의 말을 구체화한 결실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렇게 모든 사물은 대립 관계가 아니라 상응과 친화의 관계에서 서로를 존재하게 한다는 것을 김수영은 암시하고 수납한다. 이때 바람은 그러한 우주의 운동을 물질화한 가장 성스러운 기운의 기표일 것이다.

이미 다 이루어졌을 것만 같은 다양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미제(未濟)이자 난제(難題)이자 누군가의 도전을 끝없이 불러올 숙제이기도 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는 작품 배후에 숨겨진 시선(발목/발밑)을 말해야 하고, 울음이나 웃음의 주체도 논리적으로 밝혀야 하는데 그게 그리 쉽지만은 않다. 이 작품이 건네주는 의제는 그 밖에도 얼마든지 남아 있고 지금도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해석 (불)가능성 앞에서 우리는 이 작품이 가진 특유의 내구성과 확장성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lt;현대문학&gt; 1957년 12월호에 ‘봄밤’과 함께 발표된 김수영 시 ‘광야’ 앞부분. 맹문재 제공
<현대문학> 1957년 12월호에 ‘봄밤’과 함께 발표된 김수영 시 ‘광야’ 앞부분. 맹문재 제공

거대한 생명의 자율적 운동이 마지막에 이르러 “풀뿌리가 눕는” 것으로 표현된 것은, 천지인의 기운이 무수한 작용과 반작용을 통해 조화와 초월을 동시에 수행하는 경지를 자유자재로 보여준 최종 형식일 것이다. 스스로가 스스로의 존재 이유가 되고[自由], 스스로가 스스로를 존재케 하는[自在], 말하자면 우주의 기운이 꿈틀거리는 혼란의 반복을 수습하면서 시인은 고도의 질서를 구축해간다. “바람이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꽃잎’) 존재하는 사물들의, 때로는 스스로 움직이고 때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속성을 완결해낸 것이다.

서울 도봉구 김수영문학관 들머리에 세워진 ‘풀’ 시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서울 도봉구 김수영문학관 들머리에 세워진 ‘풀’ 시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아직도 이 작품은 다양한 해석 가능성으로 열려 있는 의미론적 다면체이자, 의미보다는 탈(脫)의미를 욕망하는 음악 자체로서 끊임없이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해간다. 서투른 솜씨로 인해 발생하는 조악한 난해성과는 다른 해석의 어려움은 바로 이러한 연유 때문에 발생한다. 의미론적으로 완벽하게 환원되지 않는 우주적 화음(和音)을 품은 명편 ‘풀’이 김수영의 시인으로서의 귀결점이자 풍요로운 ‘존재의 집’인 까닭이 그렇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김수영의 마지막 순간이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누운 것이라면, 이제 그는 문학사에서 바람과 친화하면서, 바람을 품으면서, 바람을 넘어, “풀뿌리”로 누워 있다. 바람이 한결같이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 작품의 제목이 ‘풀’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끝>

유성호 한양대 교수, 문학평론가

유성호 교수.
유성호 교수.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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