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미지의 것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행위에 대하여

등록 2021-11-05 04:59수정 2021-11-05 10:52

[한겨레Book] 정인경의 과학 읽기

고래가 가는 곳
리베카 긱스 지음, 배동근 옮김 l 바다출판사(2021)

고래는 자연의 위대한 피조물이다. 자연사박물관이나 다큐멘터리에서 만난 고래는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한다. 그의 카리스마에 압도되는 순간, 자연의 거대함에 비해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깨닫는다. 이렇게 경이감의 원천이었던 고래가 해변으로 떠밀려와 죽어가고 있다. <고래가 가는 곳>은 오스트레일리아 해안에 혹등고래 한 마리가 표류하는 사건에서 시작한다. 바다를 벗어난 고래는 육지의 중력과 뜨거운 태양열에 노출된다. 눌리고 데워져 숨조차 쉬기 어려운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고통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자신만의 감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고래에게 인간이 해줄 것이 없었다. 고래의 중추신경계는 크고 복잡해서 안락사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고, 죽고 난 후에 사체 토막은 산업 폐기물로 쓰레기장에 버려질 것이다.

생태환경운동가 리베카 긱스는 이 잔인한 현실을 마주하고 충격에 빠진다. 우리 시대의 고래는 박물관에서 위용을 떨치던 상징적 존재가 아니었다. 고래의 몸은 바다에 떠다니는 각종 유해물질과 독성 화합물에 중독되어 있었고, 고래 뱃속에는 비닐과 그물, 플라스틱, 가전제품 등이 가득 차 있었다. 오랜 시간 거대한 몸집에 독극물이 축적되어 고래 자체가 오염원이 되었다. 고래는 바다 오염의 희생양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표류하는 고래의 죽음은 지난 몇십년간 지구적 규모로 진행된 환경재난의 표본이었다.

이 책의 원제는 ‘패덤’(fathom), ‘미지의 것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행위’라는 뜻을 담고 있다. 고래야말로 미지의 바다에서 사는 신비한 생명체다. 이런 고래가 쓰레기장으로 가야 할 신세가 되는 것은 우리에게 큰 아픔으로 다가온다. 인간이 고래와 바다를 지키려는 것은 실용적인 이유에서만이 아니다. “자연은 우리의 상상을 늘 뛰어넘어 영원한 신비와 그치지 않을 경이로움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고래는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큰 존재이고, 우리가 아는 것보다 지구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예컨대 ‘고래 낙하’는 해저 생명체에게 더없는 양식을 제공한다. 고래는 죽어서 바다 밑으로 가라앉으며 그 거대한 몸을 해체해서 새로운 생명체를 부활시킨다. 고래 배설물에서 번성한 플랑크톤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지구의 대기를 정화한다. 고래는 지구를 가꾸는 정원사였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고래가 상황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는 특성을 연구한다. 고래의 노래는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 환경에 맞춰 진화해왔다. “고래 노래를 듣는 것은 바다의 형상을 듣는 것이다.” 고래는 종마다 고유한 소리를 가질 뿐만 아니라 개체마다 자기 목소리를 갖는다. 혹등고래는 언어공동체가 있고, 학습을 통해 노래를 배운다. 고래는 노래로 마음을 표현하고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한다. 그런데 고래의 노래가 지구온난화 때문에 달라지고 있다. 남극에 사는 대왕고래는 빙하가 깨지면서 내는 소음을 피하려고 음조를 조절한다. 마치 환경에 맞춰 사는 인간처럼 세상을 이해하고 의사소통하는 법을 찾고 삶을 변화시킨다.

지은이는 우리의 영향력이 지구 전체에 미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인간의 삶이 일상의 더할 수 없이 쩨쩨한 역할의 틈 속에 끼어서 때로 아무리 작고 하찮은 것으로 보일지라도 그 삶은 너무나 거대한 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이다. 고래를 이해하고 지키려는 작은 노력일지라도 우리의 노력은 고래의 노래와 소리에 남을 것이다. 정인경 과학저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