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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기술의 미래는 민주적 상상력에 달려 있다

등록 2022-02-04 04:59수정 2022-02-04 10:51

[한겨레Book] 정인경의 과학 읽기

테크놀로지의 정치
실라 재서노프 지음, 김명진 옮김 l 창비(2022)

21세기 기술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기술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고 지구에서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앞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기술일 것 같아요.” 이렇게 기술의 지배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지만 그 반대편에 인간보다 기술을 믿는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술이 지배하는 것이 왜 나쁘죠? 인간이 지배하는 것보다 더 낫지 않을까요.”

이들의 반응에서 우리 사회에 기술의 ‘지배’라는 용어가 익숙해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기술이 우리를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우선 인간과 기술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는지, 인간은 못 믿으면서 기술은 믿을 수 있는지, 기술의 지배를 두려워하면서 기술을 움직이는 권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대선정국에서 보여지듯 우리는 정치가에게 권력을 위임하는 일에 엄청 신경쓰면서 기술에 권력을 넘겨주는 일에 무심하다. 미국의 과학기술학자 실라 재서노프는 <테크놀로지의 정치>에서 이러한 기술의 문제와 통념을 분석했다. 기술결정론과 기술관료제, ‘의도하지 않는 결과’라는 책임 회피가 우리의 시야를 흐려놓고 있다. 잘못된 통념은 기술로부터 정치, 가치, 책임을 제거하고 민주적 통제를 가로막는다. 재서노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시스템을 창출한 권력에 대해 묻는다. 누가 기술의 미래를 상상하는가? 누가 기술의 위험과 실패에 책임지는가? “기술을 통치하는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힘은 자본과 산업에 있다.” 정부관료, 기업가, 과학자, 발명가, 금융가 등 전문가와 엘리트들은 기술시스템의 창안에 참여한다. 하지만 이들은 책임이 파편화된 초국가적 세계 구조에서 권력을 행사할 뿐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반면에 대중은 기술의 방향에 발언권을 전혀 갖지 못하고, 실패에 따른 위험을 고스란히 감수하고 있다.

기술이 정치중립적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우리는 기술의 민주적 통치에 대해 방향성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기술과 정치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재서노프는 생명공학과 관련해서 미국, 영국, 독일이 어떻게 다르게 대응했는지 연구했다. <누가 자연을 설계하는가>에서 법과 공공정책, 정치문화를 검토하고 기술과 정치의 상호관계를 밝혔다. 기술은 각 나라마다 서로 다른 사회, 역사, 문화, 정치 상황에서 설계되고 운용됐다. 기술혁신이야말로 정치투쟁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과학기술을 제시하고 기술의 미래를 그려나갔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기술은 어떠한가? 관리와 통제를 선호하는 기술, “해야만 한다는 식”의 “오만의 기술”이 판을 치고 있지는 않나? 재서노프는 과학기술이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다른 결과물을 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오만한 기술에서 벗어나려면 기술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어야 한다. <테크놀로지의 정치>에서는 평등과 책임, 겸허함의 가치를 제시하며 민주적 상상력을 촉구한다. 급격한 기술변화의 환경에서 인류가 공존하려면 우리가 살고 싶은 세계에 대한 집단적 상상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이 세상을 어떻게 지배할까’를 걱정하기보다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부터 상상해야 한다.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기술혁신이 인간의 필요와 욕구에 좀더 호응할 수 있도록 제도를 구축하고 정치적 의지를 소환하는 것이다.”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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