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정아은의 책들 사이로

김하율 지음 l 폴앤니나(2021) 다른 이를 나보다 우선 순위에 놓고 사는 사람이 있다. 식사 메뉴를 정할 때도 ‘다른 이’ 의 선호도를 우선 고려하고, 물건을 고를 때도 ‘다른 이’ 의 의중을 염두에 두며,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도 ‘다른 이’ 의 사정을 살핀다. ‘다른 이’ 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내어주고, 해오던 방식을 포기하며, 그런 희생을 완전한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한 마디로 ‘다른 이’ 의 행복을 내 행복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이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그의 영혼은 어떤 상태일까. 인간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본으로, 자신의 자기애와 타인의 자기애를 조율하는 법을 배우며 살아나간다. 자기만의 조율법을 익히고 부단히 발전시키는 사람들은 평온과 기쁨을 누리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우울과 분노에 휩싸여 산다. 김하율의 소설집 <어쩌다 가족>의 수록작인 ‘마더 메이킹’ 은 감정 호르몬 제작 회사에서 만들어내는 상품에 대한 이야기이다. 감정 호르몬제를 만드는 조감사인 밥은 사장인 킴의 지령을 받고 모성 호르몬제 제작에 들어간다. 동료인 존이 “모성은 원래 있는 건데 그걸 왜 굳이 주입해야 하느냐”고 묻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에 대한 사랑과 희생정신을 분출시키는 약물을 만드는 데 힘을 쏟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엉뚱한 일이 발생하고, 밥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에 처하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모성애와 부성애는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감정이다. 그런데 모성애에는 과장과 신화가 따라붙는 반면 부성애는 인간이 갖는 다양한 애정 중 하나로 취급된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고, 아버지는 자신의 여러 욕망을 추구해나가는 가운데 간간이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게 자연스럽다 간주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성애 신화가 얼마나 비합리적인지를 알려면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집어넣었을 구성요소를 생각해보면 된다. 아마도, 신이 인간에게 불어넣은 첫 번째 요소는 자기애였을 것이다. 자신을 사랑해야 생명체로서의 존속을 유지할 것 아닌가. 타인에 대한 희생도 나를 우선시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탄탄히 깔려 있을 때에야 가능한 법이다. 그런데 한 인간이 자신의 안위와 욕망을 깡그리 무시한 채 모든 걸 내던져서 언제나 자식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설령 가능하다 해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심신이 건강한 생명체 상태를 유지할 수 없을 테니까. ‘마더 메이킹’ 은 이러한 논리를 최첨단 과학으로 무장한 회사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재치있게 풀어나간다. 헌신과 희생을 촉발하는 호르몬제를 만들어내던 조감사가 갑작스런 변화를 맞게 되는 순간을 천연덕스럽게 풀어냄으로써 모성애 신화에 어린 비현실성을 보여준다. 메시지 전달을 위해 작가가 택한 기법은 묵직한 분위기 조성이 아닌 생물학 지식과 상상력, 세련되게 비트는 유머다. 직원들에게 일할 의욕을 샘솟게 하기 위해 기업에서 성취감 호르몬제를 주문해 구입하는 미래를 상상해보는 것은 아찔하고 참신한 재미를 선사하며, 상상력으로 무장된 능청스러운 이야기를 따라가는 과정은 독자에게 어느 순간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고정관념이 합리적이지 않았음을 인식하게 해준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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