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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앤드 데스 단편집
차무진 지음 l 요다(2022)
올봄에 보는 산은 ‘보랏빛’이 아니다. 작년에는 눈을 가늘게 만들고 그렁그렁 바라보면 산 전체가 보라색 스펀지로 보일 정도였는데, 올해 산은 다르다. 초록색으로만 보인다. 소년은 그런 먼 산 풍경을 아쉬워하며 조망하다 눈을 돌려 주위를 둘러본다. 예불 중인 스님과, 스님 몰래 무릎걸음으로 법당을 돌아다니는 동생이 있다. 예불 시간을 견디는 소년의 마음은 제대로 당도하지 않은 봄에 대한 아쉬움으로 가득 차 있다. 소년의 눈에 비친 주변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소년의 마음속 그리움의 대상이 실은 보라색 진달래가 아니라 ‘엄마’임을 알게 된다. 4년 전 소년과 동생을 절에 데려다 놓고 가버린 엄마임을.
형제를 절에 맡긴 뒤 해마다 한 번씩 방문하던 엄마가 작년에는 오지 않았다. 올해 산에 진달래가 거의 피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설령 진달래가 많이 피었다 해도 소년의 성에는 차지 않았으리라. 세속에 있었다면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동생은 아직 이별의 개념을 모른다. 하지만 동생보다 몇 살 위인 소년은 알고 있다. 이별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머무르고 있는 절간이, 예불을 드리는 무뚝뚝한 ‘산적 스님’이, 엄마가 자신들을 버렸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어린 동생이 원망스럽다.
세상에서 고립된 소년의 마음을 서정적인 풍경 묘사에 버무려 그윽하게 벼려내는 이 소설(수록 단편 ‘그 봄’)의 주된 정서는 그리움이다. 무엇을 보든, 누구와 말하든, 소년의 눈앞에는 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어른거린다. 그리움을 통과하지 않고는 세상 무엇도 보지 못하는 극한의 상황이다. 십대의 나이에 갑자기, 아무런 준비 없이, 엄마와 떨어져야 했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어린 날 부모와 이별하는 것은 다양한 이별의 형태 중 가장 쓰라리고 황망한 경우이다. 마음에 큰 상흔이 새겨지는, 살아가는 내내 그 상흔을 쓰다듬으며 살아가게 될 아픈 사건이다.
스님과 두 형제의 숨소리가 새어 나올 것 같은 정갈한 분위기의 소설은 어느 순간 극적인 반전을 맞는다. 그와 동시에 독자는 이별을 맞아야 했던 두 당사자 중 다른 한쪽의 시점으로 급격히 이동해간다. 그리고 알게 된다. 이별이 얼마나 깊을 수 있는지. 얼마나 넓을 수 있는지. 이별이라는 사건의 힘은 무지막지해서, 나를 떠난 누군가의 내면에 들어가 역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며 그리워하게 만든다. 독자는 짧고 강렬하게 펼쳐지는 반전을 접하며 이를 깨닫고 전율하게 된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이별이 있다. 그중 그 어떤 이별도 다른 이별보다 수월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이별은 언제나,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다. 생살을 뜯어내는 듯한 통증과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우리는 한 번 마음에 담았던 사람을 잊지 못한다. 마음에 담고 다니며 끊임없이 소환해 그리워한다. 그러니 이별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강도 높은 극기훈련이라 하리라. 이 소설은 그 가혹한 사실을 아름다운 필치로 담담하게 전달한다. 전달 방법과 읽는 이의 마음에 이는 파동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서, 독자는 방금 뇌리에 담긴 이야기를 소화하기 위해 한동안 버둥거리게 될 것이다.
정아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