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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울창한 자유 속에서 책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

등록 2022-03-11 04:59수정 2022-03-11 09:07

[한겨레Book] 우리 책방은요 - 김해 ‘숲으로 된 성벽’

퇴근길에 들러 책 한 권 사고, 좋은 사람들과 책모임을 하고, 햇살 좋은 창가에서 졸다가 읽다가 하는, 이런 책방이 우리 동네에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여행을 다니며 책방 있는 동네를 부러워하며 기다려 봐도, 우리 동네에 책방이 생기지 않아서 제가 책방을 열었습니다.

“성벽은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어서/ 누구나 사원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 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 한 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그 성// 어느 골동품 상인이 그 숲을 찾아와/ 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갔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본 것은/ 쓰러진 나무들뿐. 잠시 후/ 그는 그 공터를 떠났다.”(기형도, ‘숲으로 된 성벽’)

이 시가 제가 오래 꿈꾸던 책방의 모습을 더 잘 설명해줍니다. ‘무쓸모의 쓸모’, ‘무용한 것들의 힘’ 같은 말들을 좋아합니다. 세상이 쓸데없다고 하는 것 속에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진짜 보물이 숨어 있다고 믿어서, 시와 소설로 서가를 채워 놓았습니다. 이 공간이 자본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상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운 곳이기를 꿈꿉니다. 책방 출입문도 기형도 시집 표지 느낌이 나도록 만들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시집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면 좋을 것 같았어요.

책방을 연 것이 2018년 12월1일이니 어느새 3년을 살짝 넘겼네요. 그중 2년은 코로나로 다소 힘들었지만 그래도 제법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책방의 활기를 담당하고 있는 독서모임 ‘연다’와 함께 ‘시~소’, ‘숲성’, ‘다독다독’, 그림책 모임이 정기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책방지기의 사심 가득한 섭외로 작가 강연도 여러 차례 진행해 왔습니다. 신형철 평론가, 박준·이병률 시인, 조해진·이기호·황정은 소설가, 정지우 작가, 이영득 동화작가, 이정모 과학자, 철학자 고병권 선생님…. 2021년에는 전국 책방들과 함께하는 <북클럽자본> 읽기 모임에 우리 책방도 참여해 6개월간 12명의 독자들이 12권을 완독했습니다. 올해도 서양철학 입문 과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책방은 산책로 부근에 있어서 주로 주민들이 편하게 들르는 일상의 공간입니다. 40~50대가 주로 이용하고, 책방에서 내다보는 풍경이 사계절 내내 무척 예쁩니다. 작년에는 이웃 옷가게 사장님과 카페 사장님이 책을 내시고, 동네 사람들을 초대해 책방에서 출판기념회를 하며 우정을 다지기도 했습니다. 책을 통해 사람들이 연결되는 느낌이 참 좋습니다.

책 읽기는 삶의 중심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 훌륭한 지지대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여럿이 함께 읽어나갈 때 책은 그 힘을 몇 배로 주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함께 책을 읽으면서 세상의 문법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로 삶을 꾸려나갈 용기를 얻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오래오래 사람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책방이 되기를 꿈꿔 봅니다.

김해/글·사진 장덕권 ‘숲으로 된 성벽’ 대표

숲으로 된 성벽

경남 김해시 장유면 덕정로 204번길 6

instagram.com/forestgat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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