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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4년 전 드라마까지…씁쓸한 ‘대본집’ 열풍

등록 2022-03-11 04:59수정 2022-03-11 09:10

[한겨레Book] 홍순철의 이래서 베스트셀러

나의 아저씨 세트
박해영 지음 l 세계사(출간예정)

서점가에 불어닥친 드라마 관련 책 열풍이 적잖이 당황스럽다. ‘드라마셀러’라는 형태로 드라마에 소품으로 등장했던 책이나 원작소설이 인기를 끄는 현상은 이미 오래됐지만, 최근처럼 드라마 종영과 동시에 포토에세이와 대본집이 경쟁적으로 출간되고 베스트셀러 상위권 목록을 독차지하는 상황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책이 ‘오리지널 콘텐츠’가 아닌 일종의 ‘굿즈(기념품)’ 또는 ‘부속 상품’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마저 느껴져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제법 인기를 끌던 드라마가 종영하면 드라마의 여운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열혈 시청자들을 위한 포토에세이가 출간되는 것은 출판계의 상식이다. 회차를 거듭하면서 기억에 남을 만한 명대사와 명장면이 이어지고 ‘인생 드라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으면 출판사들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상당한 계약금을 지급하고서라도 드라마 제작사와 서둘러 포토에세이 출간 계약을 체결한다. 물론 드라마 제작사와 출판사가 서로 이익이 맞아떨어질 때는 드라마 기획 단계에서 이미 포토에세이 출간이 준비되기도 한다. 포토에세이는 드라마 종영을 앞둔 상태에서 온라인 예약판매로 등장을 예고하고, 출간과 동시에 화제를 모은다. 일단 순위권에 오른 포토에세이는 ‘밴드왜건 효과’를 톡톡히 누리며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점령한다. 한국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최근에는 포토에세이 저작권 구매를 위한 해외 출판사들의 러브콜도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유독 대본집의 인기가 대단하다. <갯마을 차차차>(북로그컴퍼니)로 시작해 <그해 우리는>(김영사), <옷소매 붉은 끝동>(청어람), <술꾼도시여자들>(북로그컴퍼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21세기북스), <서른, 아홉>(아르테) 등, 최근 텔레비전에서 즐겨 봤거나 보고 있는 드라마의 대본집들이 경쟁적으로 출간되고 있다. 열혈 마니아층을 넘어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판매가 확산하고 있고, 대형서점마다 별도로 대본집 매대가 설치됐을 정도다. 급기야는 2018년 방영했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까지 소환돼 대본집 출간이 준비 중이다. 3월15일 출간 예정인 대본집 <나의 아저씨>(세계사)는 ‘무삭제 대본 작품집’ ‘인생드라마, 인생책으로 만나다’ ‘니트를 입은 듯한 따뜻한 컬러의 북커버’ ‘초판 에디션 한정판의 특별한 구성’ 등, 화려한 문구들로 구매욕을 자극하고 있다. 정가가 무려 4만9600원의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예약판매만으로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상위권 목록에 올라가 있다.

감염병 시대에 접어들면서 영상 콘텐츠의 위세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나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영상 콘텐츠가 반복 노출되면서 ‘콘텐츠 우려먹기’가 당연하거나 심지어 바람직하게 여겨진다. 출판사들도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영상 콘텐츠 관련 책 출간에 열을 올리면서, 서점에서는 포토에세이나 대본집과의 자리싸움에서 밀린 다른 책들이 반반한 얼굴 한번 내밀지 못하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다. 물론 포토에세이와 대본집도 책이고 그것을 애타게 기다리는 독자들에게는 분명한 존재 이유가 있을 터다. 하지만 참신하고 색다른 기획의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기다리는 대다수 독자는 이러한 상황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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