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문학계의 원로이자 문학평론가인 정명환(
사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18일 밤에 별세했다. 향년 93.
고인은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7년 한국외대 전임강사로 교직을 시작해 모교인 서울대와 성심여대, 가톨릭대에서 교수와 대우교수로 후학을 양성했다. 한국불어불문학회장을 지냈고, 1981년부터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사르트르의 문학과 철학을 중심으로 유럽의 문학과 문화, 지성의 현 단계를 한국에 알리는 데에 주력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 작가와 지성> <졸라와 자연주의> <문학을 찾아서> 등이 있고,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등을 번역하기도 했다. 이 책은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제9번으로 나왔는데, 고인은 김우창·유종호 교수 등과 함께 이 전집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해 한국 내의 외국문학 수용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고인은 지난해 7월 생전 마지막 저서가 된 <프루스트를 읽다>를 내놓으며 마지막까지 문학 정신을 불태웠다. 특히 이 책은 불문학자인 그가 평생 프랑스 문학을 가르쳤으면서도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지 않았다는 데 대한 “부끄러움과 뻔뻔함”을 해소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뒤늦게 이 대작을 읽고 그에 대한 자신의 감상과 평가를 담은 것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겸하여 나의 추억과 생각을 담아서’라는 부제에서 보듯 이 책에서 그는 프루스트의 소설을 읽으면서 떠올린 자신의 추억과 사유를 180개의 단상으로 적음으로써 독후 감상문과 비평, 회고 에세이가 결합된 독특한 양식을 선보였다.
고인은 국민훈장 목련장과 경암학술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딸 혜영·인영·수영씨와 사위 이동호(경희대 의대 명예교수)·황성호(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3일 오후 5시로 예정되어 있다. (02)3410-3151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현대문학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