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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에미 뇌터, 수학의 정리를 삶으로 증명하다

등록 2022-04-15 10:40수정 2022-04-15 10:43

[한겨레Book] 정인경의 과학 읽기

에미 뇌터, 그녀의 좌표
에두아르도 사엔스 데 카페손 지음, 김유경 옮김 l 세로(2022)

수학은 현실 세계와 인간의 상상력을 결합한 학문이다. 19세기까지 우리는 수학과 현실 세계가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우주의 아주 작은 공간에 살아온 경험으로 우주 전체를 바라보았다. 우주가 유클리드 기하학 공간이 아닐지 모른다는 것을 인식하기까지 수천년의 세월이 걸렸다. 아인슈타인이 공간이 휘어질 수 있다고 하자, 20세기 수학자들은 새로운 공간의 기하학을 상상했다. 물리 법칙의 수학적 표현을 찾고, 유클리드 기하학의 여러 대안을 내놓았다. 이처럼 시공간의 개념은 수학자들의 상상력에 크게 빚지고 있다.

에미 뇌터는 20세기 초반 아인슈타인과 동시대에 활약한 여성 수학자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대 대수학의 기초를 구축한 인물이다. 1918년에 발표한 뇌터의 정리는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국소적 에너지 보존 문제를 해결하였다. 에너지 보존법칙은 상태가 변해도 에너지가 똑같이 유지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물리계의 불변량인 ‘보존’은 우리가 해석하기 용이한 체계로 변환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한편 1850년대 수학에서 불변량으로 ‘대칭’이 주목받고 있었다. 수학자에게 대칭은 어떤 변화에도 바뀌지 않는 속성을 뜻한다. 예컨대 정사각형은 90도 회전에 불변이고, 방정식에 대칭함수가 존재한다. 물리학의 보존과 수학의 대칭은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이 둘을 연결한 것이 바로 뇌터의 정리였다.

스페인 수학자, 에두아르도 사엔스 데 카페손은 에미 뇌터의 삶과 업적을 재조명하였다. 그는 <에미 뇌터, 그녀의 좌표>에서 ‘변환’할 수 없는 그녀만의 가치를 묻는다. 뇌터를 이해할 수 있는 주요 좌표는 무엇일까? 53년의 생이 세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이 두 개의 질문은 한 사람의 인생을 온전히 비추며 위대한 수학자의 면면을 드러낸다. 각 장의 제목은 변환, 회전, 순환, 중심, 대칭과 보존, 추상, 체계 등의 수학적 용어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여성, 유대인, 평화주의자였던 뇌터가 시대의 격랑에 맞서 수학자의 정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그려놓았다.

뇌터는 어릴 적부터 수학자가 되고 싶었다. 여성 수학자라니! 남성이라면 특별할 것 없는 직업이 여성에게는 금지된 소망이었다. 아인슈타인보다 3살 늦게 태어난 그녀는 동시대의 남성 수학자나 과학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역경을 겪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박사학위를 받고, 강의를 해서 돈을 벌고, 연구그룹에 참여하고, 각종 학회에서 발표하고, 수학자로 명성을 쌓은 일 모두가 고난의 연속이었다. “여성이 교실에 들어가면 학문 질서가 파괴된다”, “우리는 남자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돌아왔을 때, 한 여성의 발밑에서 배우도록 놔둘 수가 없다” 등의 모욕적 언사와 사회적 차별에 포위되어 있었다.

하지만 뇌터는 현대의 수학자들이 교과서에서 익히고 사용할 정리(theorem)를 남겼다. 새로운 수학의 구조를 세우고 자신의 삶으로 증명했다. 이 책의 지은이는 수학책에 나오는 정리가 사람이 만든 것임을 일깨운다. “각각의 정리에는 그들만의 두려움과 행복의 이야기가 있고, 수년간 함께한 사람들 또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중요한 순간을 함께 건너온 사람들의 흔적이 남는다. 우리는 각자 자기 경력의 함수이며, 종종 그 결과로 자신만의 아이디어와 인간성이 나타난다.” 이렇게 탄생한 뇌터의 정리는 여성들에게 더 나은 세상이 온다는 믿음을 주었다.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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