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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는 안주 때문?

등록 2022-05-13 04:59수정 2022-05-13 14:58

나의 첫 책 _ 한창훈
남대서양 섬나라 다룬 표제작
유용주 시집 제목 ‘오늘의 운세’

동갑 김소진에 얽힌 추억도
절판돼서 우주 어딘가 떠돌 듯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솔출판사)가 나온 게 1996년 3월이다. 이 책에 관해 사실 잊고 살았다. 심지어 현재 가지고 있지도 않다. 다만, 막 나온 책을 봤을 때의 어색함 같은 게 기억난다.

나는 못된 버릇이 있다. 책이 나와도 마음속에서 그 무언가가 생겨나지를 않는 것이다. 무덤덤하게 ‘나왔는개비다…’ 식이다. (젠장, 남들처럼 기뻐야 하는데 말이다.) 꼭 그래서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출판기념회라는 것을 이 책과 2년 뒤 장편 <홍합>이 나왔을 때, 이렇게 딱 두 번 했었다. <홍합>이야 한겨레문학상을 탔으니 안 할 도리가 없었기에 순수한 의미의 출판기념회는 이 책 한 권 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해보니, 가난한 전업작가에게 출판기념회는 상당한 출혈의 행사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해야 하는 책값에 당일 술값까지 작가가 모두 책임져야 했으니 말이다. 하고 나서 다짐했다. 절대 출판기념회 따위는 하지 않겠노라.

이 다짐으로 ‘출판기념회 안 하기 운동’까지 벌이게 된다. 대전충남작가회의가 발족되고 초대 사무국장을 맡았던 나는, 첫 책은 말 그대로 인생 첫 책이니 책 발송과 기념회를 하고 두 번째 책부터는 주지도 요구하지도 말자, 대신 돈 내고 사주자, 사방팔방 떠들고 다녔다. 하지만 선배 작가들은 “뭔 재수읎는 소리여” 반응했다. 동조가 없어서 나만 끝끝내 안 하고 살았다.

이 책의 타이틀인 중편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는 <대전일보>에 연재를 했던 작품이다. 평등을 꿈꾸는 노숙자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원래 제목은 ‘트리스탄 다 쿤하’였다. (연재 소개 전화 인터뷰에서 내가 ‘트’를 ‘크’로 잘못 발음한 탓에 ‘크리스탄’으로 나갔다.) 트리스탄 다 쿤하는 사람 이름이자 남대서양 섬 이름이다. 포르투갈어(語)라 쿠냐로 읽어야 한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이 섬엔 단 한 줄의 법조문만 있는데 간단히 말해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였다. 돌아가신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님 칼럼에서 읽었던 내용이다. 그러니까 파도가 칠 때는 일제히 치고 가라앉으면 함께 가라앉는 바다의 특징에서 아름다운 이유를 따왔던 것이다.(이 테마는 훗날 연작소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로 확대된다.)

그러든 말든 당시 어떤 친구는 전화해서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를 누가 모른다고 제목을 이따위로 지었냐, 지랄을 했다.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가 뭔데?”

“뻔하지. 온갖 생선회에 멍게, 해삼 같은 안주거리가 나오니까 아름답지.”

가장 앞에 있는 단편 ‘오늘의 운세’는 유용주의 시집 제목에서 따왔다. 그 단편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계란차 행상을 하는 주인공은 차선 위반으로 경찰에 단속된다. (계란차는 우측으로, 계란차는 우측으로!) 그 시절 왕왕 그랬던 것처럼 주인공은 5천원에 합의를 보고 만원짜리 지폐를 건넨다. 그런데 경찰이 거스름돈을 주지 않고 그냥 가버린다. 행상트럭과 경찰 빽차는 스피커가 장착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은 빽차를 따라가며 마이크에 외친다. (빽차는 우측으로, 빽차는 우측으로!)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에 비슷한 장면이 나와서 누군가 이 감독에게 한창훈 관련을 물어봤다는 뒷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내 단편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각자 다른 루트를 통해 그 에피소드를 알게 된 것이다.

책이 나온 날 저녁에 처음으로, 매우 어색하게, 사인이라는 것을 했다. 상대는 함정임 작가와 김소진 작가. 함정임씨가 내 책을 만든 에디터였던 것이다. 김소진씨가 말했다.

“이거, 내가 긴장을 해야겠는데요.”

물론 안 읽어보고 한 말이었다. 나와 동갑인 그는 그리고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서 주변 사람들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듣자니 이 책은 절판되었다고 한다. 이 부분도 ‘그런개비다…’ 이다.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가 자기 알아서 어딘가로 멀리 떠난 것으로 나는 받아들인다. 그럼 그 책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물어오면 이렇게 답한다.

우주 어딘가에 있겠지, 뭐.

소설가

가던 새 본다 (창비, 1998)

대산 창작기금을 받고 낸 두 번째 소설집으로 이 책부터 소설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깊어졌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애정이 가는 책이었는데 두 달 뒤 <홍합>이 나오면서 그만 밀려버렸다는 평이 당시 있었다. 최근에 이 책의 타이틀인 단편 ‘가던 새 본다’ 같은 것을 써보라는 제안을 들었다. 나는 못 쓴다고 대답했다.

홍합 (한겨레출판, 1998)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장편이다. 98년 서산에서 천안으로 이사를 가면서 다시 품팔이를 나섰다. 하지만 IMF시절이라 어떤 공사장에서도 자리를 얻지 못했다. 돌아오는 버스에 누군가 놓고 내린 <한겨레신문>이 있었다. 문학상 공고를 보게 됐고 그날부터 써내려갔었다. 당선은 살짝 꿈만 꿔보고 포기했는데 연락이 왔었다.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 (문학동네, 2001)

세 번째 소설집. 문학동네 출판사가 서울 시내에 있던 시절에 나왔다. 세상 끝, 아웃사이더, 언더, 고립… 이런 키워드들로 내 정체성이 굳어가던 때였다. 주변부에다 중심을 세워야 한다는 소리를 자주 했었다. 제목을 이렇게 지으면 안 팔린다고 조언들을 해왔는데도 그랬다. 너는 카페에 있어라, 나는 세상 끝으로 가겠다….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창비, 2003)

또 세상 끝이다. 장편인데 정확히는 연작소설이다. 귀신이 떼를 지어 나온다는 거문도 폐가에 살았던 2년간이 배경이다. 아스라한 수평선. 수억 년의 적막. 그것을 마주하고 있는, 어떤 생물체인 나. 현재 사는 집에서 이 폐가가 정면으로 보이는데 서른아홉의 한창훈이 거기에 서서 지금의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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