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책’은 창비아동문고 183, 184번째인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내 이름이 ‘창비아동문고’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창비아동문고를 처음 만난 것은 1987년이었다. 인천의 만석동에서 공부방을 열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한 선배가 창작과비평사에 다니던 지인에게 창비아동문고 100권, 두 질을 얻어주었다. 그 책을 개원 준비를 하는 틈틈이 읽었다. 어떤 책은 어린 시절의 기억 속으로 데려갔고, 어떤 책은 더 깊고 넓은 동화의 세계를 만나게 해주었다. 100권을 읽는 동안 누린 행복을 어서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공부방에 온 아이들은 혼자서 책을 읽어 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아이들이 책읽기의 행복을 알 수 있도록 책을 읽어주기로 했다. 처음 선택한 책은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였다. <행복한 왕자>는 초등학교 때 부모님께 선물 받았던 책이다. 그 책이 표지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으며 앞으로 제비로 살지, 행복한 왕자로 살지 고민을 했다. 공부방 아이들에게 읽어줄 때마다 어린 시절 꿈이 되살아났고 힘든 일이 있을 때 버틸 힘이 되었다.
1999년 봄, 아이엠에프로 벼랑 끝까지 몰렸던 이웃들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벼랑 아래로 몸을 내던졌다. 그 와중에도 정치권과 언론은 한국 경제가 되살아났다고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았다. 화가 났다. 억울했다. 그때 운명처럼 <한겨레>에서 ‘창비 좋은 어린이 책 공모전’ 광고를 보았다. 가난한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름방학을 맞아 북적거리는 공부방에서 틈틈이 글의 얼개를 짠 것을 시작으로 밤마다 글을 썼다. 석 달이 지나 원고 마감일이 다가왔는데 작품의 결말을 내지 못해 초조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공장 건물 안을 비추던 벽돌만 한 아침 햇살이 떠올랐다.
1996년에 한겨레문화센터의 아동문학창작학교에 잠깐 다닌 적이 있었다. 동화작가가 되려던 것은 아니었다. 재개발이 되어 사라질지 모르는 만석동의 시간과 사람들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글쓰기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강사가 권오삼, 이오덕, 윤기현, 원종찬, 이재복 같은 아동 문학가들이라는 데에 혹했다. 강의만 듣고 창작실습 과정은 적당히 넘어갈 깜냥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단편동화를 사흘 만에 한 편 써서 모둠 합평 시간에 가져가야 했다. 그때 내 동화를 읽은 이오덕 선생님이 동화에는 어린이들에게 줄 희망이 담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이들의 현실이 바뀌지 않는데 어떻게 억지 희망을 담느냐고 ‘마음속으로’ 항의를 했다. 그 합평 이후 아동문학창작학교에 더는 나가지 못했다. 둘째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결말을 앞에 두고 자꾸만 이오덕 선생님의 그 말씀이 떠올랐다. 그리고 깨달았다. 희망은 벽돌만 한 빛으로도 충분했다.
결말을 완성한 다음 날이 공모전 마감이었다. 퇴고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출판사로 보냈는데 운 좋게 당선이 되었다. 2002년 그 책이 공중파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되었고, 내가 들인 노동에 비해 너무 과한 인세가 들어왔다. 방송은 그 인세가 ‘괭이부리말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쓰일 거라고 했지만, 나는 동네에서 이웃이 아닌 자선사업가가 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인세의 절반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나머지는 돈이 필요한 곳에 나누고 또 나누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는 공부방을 위해서도 쓰고, 귀농하면서 진 빚도 갚고, 농사지을 땅도 조금 마련했다. 지난 20년 동안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작가라는 것이 부담스럽고 무거웠다. 그러나 이제라도 나를 작가로 이끈 창비아동문고에 내 작품이 있다는 기쁨을 마음껏 누려야겠다.
소설가
모두 깜언(창비, 2015)
2001년 강화 양도면으로 귀농을 했다. 공동체의 결정이었으나 농촌의 삶을 선택한 덕분에 계속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 수 있었다. 강화에 간 지 13년 만에 농촌을 배경으로 쓴 청소년소설을 썼다. 청소년소설뿐 아니라 성인소설에도 지금의 농촌이 배경인 작품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낮은산, 2016)
이 작품을 쓰고 나서 나는 좀 더 세심하고 따뜻한 사람, 이별을 딛고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주인공은 지금도 내 곁에 있는 우리 고양이들이다. 그러나 이 책은 용산 남일당, 세월호로 가족과 친구를 잃은 이들, 또 2016년 1월3일 바다로 간 뒤 영영 돌아오지 않은 우리 공부방 어부 이형석을 위한 애도이다.
곁에 있다는 것(창비, 2021)
가난은 철 지난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애써 다시 가난의 시간을 마주하지 않으면 희망을 위한 한 걸음을 뗄 수 없다. 열일곱이었던 내게 문학이 누구의 편인지를 알려 주었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은강. 아직도 은강에 사는 청소년들의 시선으로 노동과 가난, 여성들의 연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너를 위한 증언(낮은산, 2022)
성폭력을 다룬 소설이다. 이렇게 짧은 문장 뒤에 숨어 있는, 혹은 감춰진 이야기를 누군가는 떠올릴 것이다. 오랫동안 쉽게 지워진, 그러나 지워져서는 안 되었을 이름을 되살리고 싶었다. 애써 살고자 했으나 죽음을 선택한 이들을 우리의 곁으로 불러와야,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계속 살아갈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