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테크노사이언스 강의
대학, 기업, 정부의 관계로 본 20세기 과학사
김명진 지음 l 궁리(2022)
코로나19 백신은 과학인가, 기술인가? 과학자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구조적 특징을 이해해서 감염경로와 치료전략을 파악하고 백신을 개발했다. 그 과정에서 극저온전자현미경과 같은 값비싼 장비로 코로나19 유전자 지도를 밝혀내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전령리보핵산(mRNA) 혁명’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백신 기술을 선보였다. 백신은 과학자, 엔지니어, 신약개발회사, 질병관리청 등 정부와 기업, 학계의 참여로 만들어졌다. 과학인지, 기술인지, 지식인지, 상품인지 꼭 짚어서 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사회적 네트워크의 결과물이다. 프랑스의 행위자-연결망 이론가 브뤼노 라투르는 이 같은 현상을 ‘테크노사이언스’라는 신조어로 표현하였다.
백신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할 뿐이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과학과 기술에 관한 전통적 관점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었다. 예컨대 19세기 후반에 출현한 산업체 연구소는 세계 각국에 퍼져나가 현대 사회의 연구개발과 기술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산업체 과학자는 지식과 상품을 동시에 생산한다. 과학자의 지적 호기심과 회사의 상업적 요구, 두 가지 서로 다른 동기를 절충하며 연구하는 이들은 과거에 과학자나 기술자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정체성을 가진 존재다. 과학의 역사를 천재 과학자의 발자취로만 살펴본다면 이들과 같이 여러 요소가 얽혀 있는 테크노사이언스의 등장을 놓칠 수밖에 없다.
<모두를 위한 테크노사이언스 강의>는 이러한 과학기술학의 문제의식에서 20세기 과학사를 다시 쓴 책이다. 지난 150년 동안 테크노사이언스의 특징은 거대화, 군사화, 상업화로 요약된다. 핵폭탄 개발을 필두로 과학 연구에 엄청난 사회적 자원이 투입되었는데 그 과정을 추적하면 제도적 변화의 결정적인 계기를 만난다. 전쟁, 자본, 정부, 군대, 대학, 기업, 시민사회, 실험실, 관측도구 등이 오늘날 테크노사이언스의 모습을 형성하였다. 저자 김명진은 지금껏 과학사에서 다루지 않았던 것들에 주목해서 감춰진 진실을 드러낸다. 가령, 왜 미국이 가장 먼저 핵폭탄 개발에 성공했을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맨해튼 프로젝트는 몇몇 물리학자의 활약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우라늄을 농축하고 원자로를 건설한 엔지니어, 도급회사, 군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지닌 집단과 조직이 있었다. 미국의 원자폭판 개발은 그들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들은 보이지 않은 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이렇듯 테크노사이언스의 역사는 순수과학의 허상을 깨고 현재의 우리 모습을 직시하게 만든다. 놀랍게도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기초과학에 대한 사고방식은 냉전 시기 미국에서 발명된 것이었다. 원자폭탄의 개발은 미리 준비된 기초연구의 힘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과학의 동원체제는 해체되지 않았다. 과학에 대한 지원은 계속되었고 과학자의 사회적 위상은 높아졌다. 이후에 과학자들은 당장 실용적이지 않은 연구라도 나중에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논리로 정부 지원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이 책에서 지적한 대로 테크노사이언스의 관점에서 보면 이 논리는 과학의 발전이 기술, 사회로 이어지는 단선적인 혁신모델에 막연히 기대고 있다. 21세기에 정부와 과학계는 이전과 다른 상황에 놓여있다. “기초연구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모색하기 위해선 테크노사이언스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과학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