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RAIN)
자연·문화·역사로 보는 비의 연대기
신시아 바넷 지음, 오수원 옮김 l 21세기북스(2017)
연일 뉴스는 폭염과 폭우 소식을 전한다. 7월 초 장마 기간에 기습적인 폭우와 열대야, 가뭄과 같은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뜨거워진 대기와 바다의 에너지는 흩어지지 않은 채 위로 올라가 기상이변의 출구를 찾는다. 물이 없는 지역은 기온 상승으로 극심한 더위와 가뭄에 시달리고, 물이 있는 지역에 비는 폭우로 쏟아진다. 이렇게 기후변화가 두려운 현실로 다가와, 영화 <매그놀리아>의 개구리 비처럼 이상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비(RAIN)>의 저자, 신시아 바넷은 날씨 때문에 심란해진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기후변화 논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비가 소통의 창구가 될 것이라고 조심스레 기대감을 내비친다. 우리는 빗속에서 태어났다. 우주를 건너 지구에 도달한 비는 생명수였으며, 인류 문명의 터전이었다. 수만년 동안 가뭄과 홍수에 적응하며 살아온 호모 사피엔스가 비를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린 시절에는 비 웅덩이에서 발을 구르고 시원한 소나기에 몸을 식히며 뛰어놀았다. 통통한 빗방울에 손과 혀를 내밀어 보고 상쾌한 비 내음을 한껏 들이마셨다. 이 책은 과거에 온몸으로 느꼈던 비의 감각을 다시 불러들인다. 비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자연과의 만남 가운데 최후로 남은 길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과학자들은 미지의 비의 향기를 붙잡으려 노력했다. 비 내음은 비의 종류, 비가 내리는 지역, 냄새 맡는 사람의 후각과 기억에 따라 다르다. 도시의 비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스팔트 냄새가 나고, 시골의 비는 풀숲의 향긋한 내음을 전하고, 바다의 비는 해변과 갯벌의 비린내와 짠 내음을 풍긴다. 그중에서 가뭄을 해갈시키는 비, 메마른 땅을 흠뻑 적시는 흙 내음만큼 반가운 것은 없다. 과학자들은 비와 흙이 만드는 향기, 테르펜(terpene)을 찾았다. 소나무와 페퍼민트, 생강 내음이 나는 테르펜은 침엽수와 이끼 등의 식물에서 방출되어 있다가 암석과 흙에 스며든다. 비가 오고 습기가 이동하기 시작하면 암석 속에서 테르펜이 빠져나와 바람을 타고 퍼져간다.
신시아 바넷은 인도 북부의 카나우지 마을에서 비의 향수를 만드는 전통적 비법을 찾아 나선다. 이곳 주민들은 비가 오기 전에 바싹 마른 흙에서 비의 냄새를 추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대지에 내린 첫 비의 향은 몬순 우기가 닥치기 전, 5월과 6월에만 제조되었다. 인도인들은 이것을 고향의 냄새, ‘흙의 향수’라고 불렀다. 이 책을 읽노라면 어린 시절과 내가 살던 세계의 비 냄새를 추억하게 된다. 이렇게 바넷은 숨어 있던 비의 언어와 감각을 깨우고 잊힌 비의 역사를 복원한다. 그리고 빗방울이라는 프리즘으로 물과 기후, 불확실한 인류의 미래를 비춰 보여준다.
우리는 그 옛날 공룡이 먹던 빗물을 똑같이 마시며 산다. 비에 관련된 속담에 무수히 등장하는 개구리는 환경상태를 반영하는 생물지표이다. 개구리의 안녕이 곧 환경의 안녕인데 2500만년 동안 끄떡없이 생존한 개구리는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비를 사랑하는 이 작은 생물지표는 인류에게 뭔가 말하려 애쓰고 있음이 분명하다.” 인류는 비를 찬양하고 저주하고 지배하려다가 마침내 비를 바꾸는 단계에 이르렀다. 오늘날 가장 이상하게 내리는 비는 바로 인간의 작품이다. 장마철이 가기 전, <비>와의 조우를 통해 자연의 감각을 되찾고 오래된 미래를 만날 수 있기를.
정인경/과학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