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계급의 출현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이규현 옮김 l 이음(2022)
마르크스는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후위기를 알리는 ‘경계경보’는 계속 울렸다. 특히 지난 10년은 위기상황이 한껏 고조되었다. 그럼에도 철학의 지배적인 흐름은 해석하는 데 매달렸지, 변혁의 물꼬를 트는 데 앞장서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파국이 눈앞에 다가왔는데 인류는 반응하지 않았다. 팽만한 불안감이 오히려 “행동을 마비”시켰다.
일찌감치 기후위기를 극복할 철학적 대안을 내세워 온 브뤼노 라투르는 니콜라이 슐츠와 함께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돌파할 전위를 빚어낸다. 그 전위는 아마도 하나의 유령일 터, 지구를 배회하는 그 유령의 정체를 지은이들은 녹색 계급이라 명명했다. 이 계급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장소로서의 세계와 사람들이 살아가는 수단으로서의 세계를 동일”하다고 여기고 “지구 차원의 거주 가능성을 떠맡는다.”
지은이들은 녹색 계급은 생산 개념에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한다고 명토 박았다. “사회를 희생시켜 경제를 자율화한 것”을 전면적으로 거부한다. 그동안 인류는 생산을 위한 자원의 동원에만 관심을 기울였고, 인간에게 유리한 물질적 조건의 재생산에만 힘썼다. 그 결과는 우리가 지금 맞이한 총체적 파국으로서 기후위기다. 인류는 뒤늦게 생산체계는 파괴체계와 동의어라는 사실을 깨달은 셈이다.
녹색 계급은 생산체계의 장악만을 목표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거주하고 생성의 실제를 돌보는 방식”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지은이들은 주장한다. 브뤼노 라투르 특유의 개념인 ‘생성 시스템’이 등장하는 대목이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계급투쟁이다. 그동안 생산의 열매를 나누는 문제에만 매달려 지구의 물질적 조건이 드러낸 한계에는 눈을 감았다. 기득의 세력은 여전히 생산관계를 확장하고자 한다. 하지만 녹색계급은 생산관계의 자리를 제한한다. 번영, 해방, 자유의 허상을 까발리면서 거주 가능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 체계와 투쟁해야 한다고 지은이들은 목청을 높인다.
브뤼노 라투르는 가이아 이론을 받아들여 지구라는 행성에서 거주 가능한 상황을 생명체들이 스스로 만들어냈다고 여긴다. “스스로를 생성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뜻이다. 그런지라 이 지구에서 거주 가능한 존재는 호모 사피엔스에 국한되지 않는다. “녹색 계급은 영토와 땅이라는 용어를 쇄신하여 거기에 많은 생명체를 완전히 다시 거주하게 했다.” 이 관점에 동의하면 “나는 의존한다. 이것이 나를 해방하는 것이다”라는 가치의 전복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마비상태에서 벗어나 “마침내 행동할 수 있다.”(생성 시스템과 가이아 이론을 자세히 이해하려면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을 읽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다”고 선언했다. 지은이들은 이 책에서 “녹색 계급이 얻을 것은 뭇 생명이 거주 가능한 지구 전체다”고 선언한다. 이권우/도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