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 알렉산더 홀에서 열린 21개국 대사 신임장 제정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 지정학 아틀라스
델핀 파팽 외 지음, 권지현 옮김 l 서해문집(2023)
일목요연하다는 말이 있다. 단박에 알아본다는 뜻이다. 복잡하고 어지럽고 헷갈리는 사안을 대할 때면,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으면 하고 바라게 마련이다. 지도와 인포그래픽으로 러시아의 현황을 설명한 ‘러시아 지정학 아틀라스’는 그런 바람을 만족시켜 준다. ‘지정학’이 무엇인지는 서문에 짧고 인상 깊게 설명했다.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갈등관계를 연구”하는 거란다.
냉전 기간 소련은 미국과 세계를 양분했다. 그러나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누가 보아도 제국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특히 발트 3국의 독립과 캅카스 지역 공화국의 독립이 치명타인 듯싶다. 서방의 관심이 이슬람 과격주의에 몰려 있을 적에 러시아는 과거 영토를 회복하기 위한 전쟁을 일으켰다. 이른바 지정학적 변화가 긴장과 분쟁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유혈진압한 체첸의 독립운동,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참혹한 전쟁, 조지아와 벌인 전격전, 크림반도 합병, 돈바스 지역의 무력충돌,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그야말로 피로 얼룩진 역사다.
러시아는 1999년 이후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하면서 경제가 성장했다고 한다. 2018년의 기록을 보면,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이 정부 수입의 46.4퍼센트를 차지했다. 서방과 긴장관계가 높아지면서 중국과 밀월 관계가 깊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도 있다. 먼저 러시아의 중국 수출 비중이 14.9%까지 치솟았고, 중국의 주요 석유 수입국을 보면 2019년 355억달러의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러시아가 337억달러를 차지했다. 중국의 주요 무기수입국은 러시아가 압도적인 1위다.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의 에너지 산업이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의 의존도가 유럽에서 아시아로 넘어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러시아는 발트해 주변국이 나토에 가입하자 큰 위기감을 느꼈다. 지도와 인포그래픽을 보면 마치 맹수의 목젖을 누르는 듯한 형국이다. “결국 러시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칼리닌그라드라는 ‘창’만 남았”다는 긴박한 상황이 되지만, 러시아 전초기지로서 발트해의 요새가 된 칼리닌그라드는 역설적으로 “나토의 발에 꽂힌 가시”가 되었다. 군비도 확연히 증가했다. 2016년에는 800억달러에 이르렀고 이를 바탕으로 푸틴은 다섯 차례에 걸쳐 전쟁을 벌였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당연히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루었다. 지도로 보는 우크라이나 역사는 이 전쟁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득력 있게 전해주고, 인포그래픽으로 만든 ‘차이를 만들어낸 무기들’은 비대칭적 무기체계를 한눈에 알아보게 해준다. 흥미로웠던 것은 동방정교회의 분열을 다룬 대목이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청은 정교회의 역사적 요람인지라 상징적인 권력을 누린다. 그런데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은 전 세계 정교회 신자의 절반이 속해 있어 영향력이 크다. 우크라이나 신자는 소련 시절에는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소속이었으나, 2014년 크림반도 합병과 돈바스 전쟁을 거치면서 소속을 키이우 총대주교청으로 옮겼다.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청이 우크라이나 독립 교회를 창설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물리적 전쟁 이전 종교전쟁이 있었고, 거기서 우크라이나가 승리했던 셈이다. 푸틴은 두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바깥에서 벌이는 야만적이고 극단적인 전쟁”이 그 하나이고, 안으로는 “반정부 시도를 진압하고 불만세력의 응집을 막는” 사회를 억압하는 전쟁이다. 어디 푸틴만 그러겠는가.
이권우/도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