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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번역서와 함께하는, 우리 모두의 아늑한 서재

등록 2022-07-22 10:49수정 2022-07-22 10:52

우리 책방은요│번역가의서재

번역가의서재 외부 모습.
번역가의서재 외부 모습.

“서점이름이 왜 ‘번역가의서재’인가요?”

햇수로 5년째인데 처음 서점을 열고 지금까지 여전히 자주 듣는 질문이다. ‘번역가의서재’라는 이름은 현역 번역가인 서점 주인의 서재를 그대로 재연한 서점이라는 콘셉트를 알리고자 직관적으로 지은 이름이다. 그렇게 지은 이름에 걸맞게 서점의 서가는 당연히 ‘번역서’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번역서를 선택한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책이 번역서이고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세계문학을 중심으로 번역서를 주로 읽어왔기 때문에 잘 알고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어서였다. 국내외 도서부터 독립출판물까지 다양한 책을 한데모아 비치한 서점들이 전국 곳곳에 계속 늘어가는 추세에 비슷한 콘셉트는 식상하게 느껴졌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서 읽고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는 책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과 좋은 번역서를 널리 소개하고 싶다는 번역가로서의 사명감도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국내도서를 비치하지 않는 것이 서점으로서는 단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서점 주인이 번역가이고, 읽은 책 중에서 엄선한 좋은 책을 소개하는 서점이라면 충분히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서점을 연다면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꼭 지키고 싶었다. 한마디로 번역가의 서재는 현역 번역가가 운영하는 양질의 번역서만을 취급하는 서점이다. 나아가 ‘내 서재처럼 아늑한 서점’이라고도 소개하고 싶다. 오며가며 들르는 손님들이 내 서재처럼 아늑한 공간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번역가의서재 내부 서가.
번역가의서재 내부 서가.

번역가의서재 내부 모습.
번역가의서재 내부 모습.

번역가의서재 ‘손님이 선택하신 책’.
번역가의서재 ‘손님이 선택하신 책’.

다행히도 내 바람대로 손님들이 나만의 서재처럼 느끼고 편안하게 책을 읽고 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동네 주민들의 모임 장소가 되었고 독서모임을 시작으로 여러 소모임이 만들어졌다. 돌이켜 보면 이리 재고 저리 재지 않아서일까, 순수하게 책을 좋아하고 공간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지금처럼 단단한 커뮤니티가 만들어진 것 같다. 소모임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진행하고 꾸준히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커뮤니티를 이끈 덕분이다. ‘번서’(단골들이 ‘번역가의서재’를 줄여서 부르는 애칭)의 프로그램은 무조건 믿고 듣는다는 큰 호응에 기대어 독서모임을 시작으로 원서로 배우는 일본어 모임을 4년 넘게 쉬지 않고 유지하고 있고, 올해 새롭게 시작한 ‘번서 음감회’도 회를 거듭할수록 뜨거운 반응이다.

이제 서점은 책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를 만들어가는 문화공간으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동네에 다양한 모습의 서점이 계속 생겨나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이런 변화에 발맞춰나가는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과 보람을 느낀다.

내 서재이면서 모두의 서재가 된 이곳에서 책을 매개로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 자체가 서점 운영자이자 번역가인 나에게도 항상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더욱이 외출이 조심스러운 이 시국에도 마스크 너머로 진심어린 관심과 말 한마디의 응원을 건넬 수 있다는 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과 감정들이 서점을 열지 않았다면 절대 누리지 못했을 특별한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서점을 운영하면서 책을 많이 팔고 널리 알려지는 것만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취향을 공유하고 소소한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일상이 정말 값지고 소중하다. 이 소중함을 잊지 않고 마음에 새겨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책을 구매하기 위한 서점이 아닌, 지친 일상에 쉼표가 필요할 때마다 찾게 되는 아늑한 아지트로 앞으로도 오래오래 남기를 바란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온기를 느끼는 공간, 내가 좋아하는 일을 누군가가 좋아해주는 이 공간이 존재함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번역가의서재 ‘이달의 전시’.
번역가의서재 ‘이달의 전시’.

번역가의서재 내부 서가.
번역가의서재 내부 서가.

번역가의서재 ‘번역가의 오늘의 책’.
번역가의서재 ‘번역가의 오늘의 책’.

번역가의서재 ‘번역가 특강’ 모습.
번역가의서재 ‘번역가 특강’ 모습.

어느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서가를 찬찬히 둘러보면서 책을 고르는 한 손님의 모습을 바라보다 괜스레 뭉클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좋은 책을 함께 나누는 순간이 행복해서 그랬던 것 같다. 문득 이 장면을 혼자만 보기에는 아쉽다고 느꼈고 찰나의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서점 에스엔에스(SNS)에 ‘손님이 선택하신 책’이라는 제목으로 매주 꾸준히 소개하고 있는데 쏟아지는 수많은 사진들 속에서 고작 몇 장의 책 사진과 몇 줄의 짧은 글이지만 소개 글을 빠짐없이 읽고 찾아오는 손님들과 소통하는 즐거움이 있다. 소소한 추억을 만들어주는 손님들과 함께 그렇게 나만의 속도와 철학으로 손님들과 소통하며 서점의 공기를 채워가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는 코로나19로 주춤했던 행사를 서서히 진행할 계획이다. 매달 출판사와 협업해 진행하는 이달의 전시회 이외에도 서울시와 함께하는 ‘서울형 책방’(움직이는 책방) 프로젝트 협업과 마포구와 함께하는 번역가의 문학 강좌, 북콘서트 등 다채로운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또 원서 낭독회, 번역가 세미나 등 지적 욕구를 채워줄만한 전문적인 주제를 다룬 다양한 자체 프로그램도 구상 중이다. 궁극적으로는 지금처럼 유의미한 세미나에 참여할 수 있고 밀도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서점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행복한 고민을 이어가려 한다.

무슨 일이든 마음먹기에 달려있겠지만 꾸준히 유지해 나가는 데 큰 노력이 필요하다. 외부와 비교하지 않고 번역가의서재’만의 소신 있는 색깔을 지켜간다면 오래도록 좋은 책과 독자를 지금처럼 단단하게 이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내 서재에 찾아오는 모든 이들이 아늑하게 머물다 가기를, 일상에 책이 스며드는 모두의 서재가 되기를” 마음속으로 되뇌며 오늘도 어김없이 활짝 문을 연다.

글·사진 박선형 번역가의서재 대표

번역가의서재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17길 67(서교동) 101호

www.instagram.com/tlb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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