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제안으로 300권 미만 소규모 출간된 <곽재식 단편선> 표지 이미지. 작가 제공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크게 성공한 작가는 대체로 책을 많이 쓰지 않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책으로 많은 돈을 벌면 굳이 책을 여러 권 안 써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이유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꼭 돈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책이 큰 성공을 거두면 적어도 대개는 다음 책도 그에 버금가는 좋은 책을 쓰겠다는 각오로 글을 준비하게 된다. 하지만 큰 성공을 거둘 만한 글을 준비하기는 그만큼 쉽지 않다.
반대로 완전히 망한 작가도 책을 많이 쓰게 되기는 어렵다. 현실만 놓고 봐도, 창고에 책 재고가 잔뜩 쌓여 있는데 출판사들이 책을 또 내자는 제안을 할 까닭이 없다. 설령 다른 기회가 생겨도 작가 본인 역시 글에 또 손을 대기가 쉽지 않다. 자신감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열심히 글을 썼는데, 아무도 보려고 하지 않고 별다른 평가도 받지도 못했다는 느낌을 받으면 아무래도 예전처럼 또 글을 쓰기란 어렵다.
그런데 성공한 작가와 망한 작가 사이에 어중간하게 책이 팔린 작가가 되면 글을 꾸준히 계속 많이 쓰게 되는 듯하다. 책이 적당히 팔린 것을 보면, 약간은 용기도 나고 약간은 아쉬워 약이 오르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이 정도 쓰면 그래도 망하지는 않는구나 싶어 비슷한 힘으로 글을 더 쓸 자신을 갖게 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음번에는 어떻게 조금만 더 잘하면 정말 좋은 책을 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의욕을 갖고 새 일을 잡게 된다. 나는 바로 그런 어중간한 범위에 있기에 끊임없이 책을 썼던 것 같다.
여기에 더해서, 작가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계속 부지런히 글을 쓸 수밖에 없다는 좀 더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 누군가 ‘진달래꽃’ 같은 걸작을 남겼다면, 고작 반 페이지면 옮길 수 있는 시 한 편만 썼다고 해도 위대한 시인으로 영원히 존경받고 누구에게나 “내 직업은 작가요”라고 말할 수가 있다. 그러나 내가 쓰는 책 정도로는 도저히 그런 수준의 작가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어찌어찌하다가 그럴듯한 지면에 글을 한 번 써 본 적이 있다고 한들, 계속 글을 쓰고 있지 않은 다음에야 “내가 작가이며, 작가로 글을 쓰면서 살고 있다”고 말하기는 민망해진다. 그래서 어중간한 작가인 나는 열심히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계속 글을 써야만 한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로 <곽재식 단편선>이라는 책에 관한 사연을 이야기해 볼 수도 있겠다. 나는 2006년부터 글을 잘 써 보려고 정말로 애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후로 가끔 여러 작가들이 함께 글을 묶어 내는 책에 글을 싣기도 하고, 아주 가끔 잡지 같은 곳에 짤막하게 글을 싣게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몇 년간은 내가 혼자서 글을 쓴 책은 한 권도 내지 못했고, 여러 번 도전해 보았지만 무슨 공모전이나 문학상 같은 것을 수상하는 데도 전부 실패했다.
그런데 그런 답답한 삶이 이어지던 2009년 3월1일, 나는 한 인터넷 게시판에서 곽재식 작가를 초청해서 독자들과 대화를 해 보려고 한다는 모임에 초청을 받게 되었다. 실제로 독자와의 대화라고 해서 무슨 대단한 행사는 아니었다. 그냥 경기도 어귀의 어느 시장통에 있는 맥줏집을 빌려서는 치킨과 맥주를 마시는 가운데, 모인 사람들이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고, 그러면 내가 답변을 해 주는 정도로 이른 봄 날씨 좋은 휴일 오후, 몇 시간 즈음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이 남아 있다.
그래도 그때 그 시간이 재미난 추억이 되었는지, 모임에 참석해 주셨던 독자 중 한 분이 중심이 되어, 내가 이런저런 곳에 내어놓았던 단편 소설을 한데 모아 책으로 만들어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나누어 갖자는 계획을 추진해 주셨다. 나에게 먼저 허락을 구하기에 나는 동의했고, 그렇게 해서, <곽재식 단편선>이라는 책이 백권인가, 2백권인가, 3백권인가 나왔다.
정식으로 유통된 책도 아니고, 서점을 통해서 팔린 책도 아니지만, 나는 그 책을 내 첫번째 책이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나온 책이기에 그 책을 갖고 있는 독자님들은 특별히 더 각별한 애정으로 <곽재식 단편선>을 좋아하고 계신 듯하다. 또 그런 만큼 가끔은 알 수 없는 경로로 책이 이리저리 흘러가서 이상한 곳에 책이 자리 잡은 사례를 발견하고 놀랄 때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듀크 대학에 있는 퍼킨스 앤 보스토크 도서관에 이 책은 관리번호 005447749번으로 등록되어 서가에 꽂혀 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 그때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부지런히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 그 시절, 제대로 된 책 한 권을 낸 적도 없고, 변변한 평가를 받지도 못했던 작가를 위해, 모여서 같이 이야기해 주고, 응원해 주고, 책을 내어 준 독자님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감사하다.
소설가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온우주, 2013)
이 책이 나오기 전 5, 6년 동안 낸 단편 소설 중 대표작이라 할 만한 작품을 모았다. 반응도 괜찮아서, 내 단편 소설 중에는 처음으로 영화화 계약을 했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처음 곽재식의 글을 읽어 본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일까 두루두루 맛을 보기에도 좋다.
모살기(온우주, 2013)
처음으로 낸 역사 소설 단편집. 대체로 삼국시대 무렵을 배경으로 한 단편·중편 소설들을 모았다. 한국인의 위대함은 신경 쓰지 않고, 옛 시대의 독특한 정취 속에서 재미난 이야기, 신기한 이야기를 하는 데만 집중했다.
신라 공주 해적전(창비, 2020)
한반도 인근에 해적이 들끓던 신라 말 무렵의 시대를 배경으로 쓴 모험 소설. 영웅이나 위대한 인물 중심 이야기가 아니라, 범죄자·사기꾼·악당들인 해적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여러 편 도전했는데, 그중 깔끔하게 한 권의 책으로 나온 게 <신라 공주 해적전>이다.
로봇 공화국에서 살아남는 법(구픽, 2016)
교양서 내지는 에세이에 가까운 책이다. 다른 인공지능 책에서는 별로 다루지 않는 색다른 이야깃거리를 다루기도 했고, 기술 발전의 과정이나 기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따져 본 사항도 풍부한 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