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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방? 아침엔 없앨 생각, 저녁엔 만들 생각!

등록 2022-10-14 05:00수정 2022-10-14 11:38

우리 책방은요│이후북스

이후북스 망원점에서 진행한 ‘책을 찢다’ 프로젝트. 황부농씨 제공
이후북스 망원점에서 진행한 ‘책을 찢다’ 프로젝트. 황부농씨 제공

아니, 위 제목은 반대로 말해야겠다. 아침에는 책방을 만들 생각, 저녁에는 책방을 없앨 생각. 그래, 이게 현실적으로 바른 순서지. 어쩌다 책방을 두 군데 운영하고 있는데(이후북스는 서울 망원동과 제주 삼도이동에 책방이 있다) 대부분의 나날은 불티나게 책이 팔려서 정신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방에 앉아 있다. 이쯤에서 한번 웃고 넘어가자. 하하하. 이게 농담이 아닌 점에서 웃을 수만은 없지만.

사람들은 책방이 의미 있는 공간(동네 사랑방, 쉼터, 커뮤니티 공간 등)이 되길 바라고 좋은 일들을 도모해서 사회적으로 밝고 긍정적인 곳이 되길 꿈꾸거나 기대하지만, 난 아주 속되고 속되어 그냥 좋아하는 책을 많이 팔고 싶다. 그래서 돈 많이 벌고 싶다, 정도가 꿈이고 희망이며 원천징수적인 바람이다. 그 이면에는 내가 좋아하는 책 실컷 읽고 싶다, 가 있겠다(내게 책은 산소 같은 것이다). 내 목표는 단순하다. 문제가 있다면 그 단순한 것이 어렵다는 것이고 그래서 나의 과제이고 앞으로도 예상되는 힘겨움일 것이다. 왕년에 책 2권 사던 사람도 겨우 1권을 살까 말까 한다는 21세기니까.

어쨌든 많이 팔아보려고 남들 하는 것들 나도 좀 한다. 책을 포장해서 판다든가 작가님 모시고 북토크를 연다든가 독서 모임, 책 만들기 워크숍 등. 그렇게 모임을 하면 친구도 생기고 인연이 이어져서 또 다른 모임과 만남이 연결되니 많은 이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책방의 이상적인 모습이 펼쳐진다. 그리고 책은 오늘보다 내일 더 많이 팔린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권선징악 해피엔드일 테다. 그러면 나는 책방을 없앨 생각은 하지 않고 책방을 만들 생각만 할 텐데… 오늘 아침에도 생각했다. 두 군데 중 하나는 없애야 하나? 책 한 권 파는 데 너무 품이 많이 드니 말이다.

망원점도 버거웠는데 제주점까지 오픈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미래책방’이라는 책방이 있었는데 그만둔다고 했고, 이어받을 사람을 수소문한 끝에 내 귀에까지 들어온 것이다. 난 서울에 사는데. 서울에서 우리 식구들(고양이 네 마리) 먹여 살리고 있는데 제주에서 어떻게? 근데 어쩐지 그곳은 책이 불티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잘 팔릴 것 같아, 한 299초 정도 고민하다 그럼 내가 이어서 하겠다고 했다. 바야흐로 메타버스와 엔에프티(NFT)가 도래한 이 가상의 시대에 물리적 공간을 두 군데나 두다니.

이후북스에서 진행된 북토크 행사 모습. 황부농씨 제공
이후북스에서 진행된 북토크 행사 모습. 황부농씨 제공

그러나 나는 열었고 보았고 팔았노라. 무엇을? 책이 아니라 내 영혼을! 아, 내가 팔아야 할 것은 책인데(내 영혼은 값을 매길 수가 없어 그저 0원에 수렴한다는 안타까운 사실). 두 군데의 책방 모두 정기휴무라고는 없다. 이후북스는 나와 동업자(‘상냥이’라는 안 상냥한 동업자)가 같이 운영하는데 한 명이 서울에 있으면 한 명은 제주에 있다. 우리 책방은 출판도 겸하고 있어서(어떤 책을 만들었는지는 지면이 짧아서 쓸 수가 없다) 운영 시간 외에도 재택근무를 많이 한다. 아무튼 책 많이 팔고 싶은 욕심에 책방을 하나 더 만들어야지 생각하다가 책방이 있어 봤자 책이 안 팔리니 없애야지 싶고. 근데 없애면 팔 수가 없으니 만들어야지 싶고. 이렇게 7년 동안 반복 중이다. 그래서 말인데 좋은 자리 있으면 저한테 알려주세요. 책방 하나 더 만들려고요.

이후북스 망원점 내부. 황부농씨 제공
이후북스 망원점 내부. 황부농씨 제공

이렇게 간절히 책이 팔고 싶지만 안 팔린다고 좀 징징거려야, 어휴 내가 좀 사줄게 하며 선한 마음의 사람들이 사준다, 라고 쓰고 싶지만 그건 기분이다. 독자들은 냉정하다. 까탈스럽다. 엄선된 책을 좋아한다. 확실한 개취(개인적 취향)가 있다. 그런 취향에 일일이 다 맞출 수는 없지만 최대한 많은 고려를 해봐야 한다. 물론 책방지기의 취향이 가장 많이 반영되지만. 한 권 한 권을 품을 들여서 읽고 고른다. 그리고 책방지기의 취향에 공감하도록 애쓴다. (또는 제발 좀 사달라고 주접을 떤다) 그 책을 만든 사람들보다 홍보를 더 잘하고 많이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면 작가나 출판사가, 우리 책을 이렇게나 좋아하는 책방이 있다니! 하며 감동의 눈물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마워하며 책방에 발걸음을 옮기고 책방을 소개해 준다. 그러면 얼씨구나 책방지기도 손뼉을 친다. 슬램덩크에서 강백호와 서태웅이 손바닥 마주치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그런 부딪힘은 누군가에게 가 닿는다. 나를 위해 하는 일이 함께 즐거운 순간이 된다. 작가(제작자) 독자 그리고 책방지기. 트라이앵글이 울려 퍼진다. 좋은 소리가 난다는 말이다.

나는 어쩌면 그 소리를 더 퍼트리고 싶어서 책방을 또 만들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일 아침엔 마음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이후북스 제주점 내부. 황부농씨 제공
이후북스 제주점 내부. 황부농씨 제공

글·사진 황부농 이후북스 책방지기

이후북스
서울 마포구 망원로4길 24

이후북스 제주점
제주시 관덕로4길 3

https://www.instagram.com/now_after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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