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 진행되는 ‘뭐하나바(BAR)’ 행사.
2000년이 시작되고 파주 교하에 신도시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곧 도서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교하신도시에 모여든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은 교하도서관을 좋아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교하도서관이 마을 이웃을 더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네요. 다른 곳에서 만나기 힘든 강좌를 열고 질문하는 이들에게 연락하여 강연에 이은 토론회를 만들어낼 만큼 적극적이었습니다. 교하도서관의 독서 동아리 ‘책벗’도 사서 선생님의 강요(?)에 등 떠밀린 시민들이 만들었고 지금까지 매주 수요일에 모여서 책을 읽습니다. 물론 도서관 사서의 극성만으로 유지되지는 못하겠지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이웃들도 제법 됩니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당(에서 멈추지 않고 저질러버리는)하는 힘이 ‘쩜오책방’을 만들었습니다.
‘인싸’가 소개하는 책 말고 이웃이 소개하는 책을 팔아보자는 단순한 생각으로 책방을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다섯이 시작하여 숫자 ‘5’를 붙이게 되었는데 모인 이들이 비(B)급 문화를 좋아하다 보니 ‘1’이라는 완성체가 아닌 ‘.5’가 어울리겠다 싶어서 책방이름 뒤에 ‘.5’를 붙였습니다. 신도시 한 귀퉁이 골목에서 책방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저희도 자신할 수는 없었지만 독서 동아리 책벗과 마을 이웃이 더해져 협동조합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마을 이웃과 함께 만든 협동조합이니 자연스럽게 ‘.5’에는 이웃이 절반을 가져와 ‘1’ 이상의 것을 만드는 공유 플랫폼의 뜻도 담기게 되었습니다.
조합원과 이웃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쩜오책방에서는 함께 기획한 강연, 모임, 공연이 실현됩니다. ‘월간이웃’에서는 이웃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쩜오윤독방’에서는 함께 소리 내 책을 읽고 상대의 목소리로 책을 맛보고 있습니다. 책벗은 13년째 매주 수요일 저녁에 책을 읽으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다름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이웃과 함께 마을 잡지 ‘디어교하’를 만들면서 이웃들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청년 조합원 ‘뭐하’(활동명)는 토요일 밤 ‘뭐하나바(BAR)’를 열어 이웃 청년들이 작업하고 담소 나누는 ‘아지트 공간’으로 서점을 변신시키기도 합니다. 동네 공방 장인과 함께 하는 강연, 장인과 동네 이웃이 함께 걷기 좋은 동네를 만들어나가는 커뮤니티 아트 활동 등을 통해 책방 안과 밖의 경계도 지워나가고 있습니다.
이웃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나는 ‘월간이웃’ 행사 모습.
코로나19 이후로 우리는 이웃을 만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팬데믹의 세상에서도 전쟁은 시작되고 내일을 그려보는 것도 어려운 혼돈의 세상에서 막막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을 단위의 이야기는 철부지 어린아이나 할 소리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 주변을 돌아보고 함께 작당하고 실험하는 것은 소중합니다. 정신없이 달리느라 놓친 것들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작은 부스러기들이라 외면하지 않고 주변의 티끌을 모아 보고 싶습니다. 흐려진 경계 위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에 가치를 부여하고 ‘돈’ 없이 살 수는 없는 세상이지만, ‘관계재’로 조금 더 넉넉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마을의 책방이면 좋겠습니다.
파주/글·사진 이정은 쩜오책방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