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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꾸역꾸역 4년 다음엔 해맑은 다섯살 책방이길 [책&생각]

등록 2022-11-11 05:01수정 2022-11-11 10:56

우리 책방은요│마그앤그래

책방 ‘마그앤그래’의 내부 모습.
책방 ‘마그앤그래’의 내부 모습.

마그앤그래(이하 마그)는 수원 권선동에 있는 아담한 책방이다. ‘책’이라 쓴 돌출간판 하나 없이 부동산, 세탁소,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있는 상가 2층에 숨은 듯 있다. 이곳은 만나기만 하면 “언제 그만둘까” -그러면서 5년을 꽉 채운-를 공모하는 사람 둘이 운영하고 있다. 둘은 여섯살 차이 나는 자매로, 동생은 돈을 관리하는 말 그대로 사장이고, 언니인 나는 책과 행사 등을 담당한다.

마그에서 이뤄진 멋진 일들은 대개 우리 둘이 아니라 손님들에게서 출발했다. 소설 모임은 <안나 카레니나>를 주문한 손님에게 “독서 모임에서 읽으시냐?”고 무심히 던진 질문에서 시작됐다. 그 인연으로 아이들 읽기 모임도 열렸다. 손님이 운영하는 학원에 아이들이 다니게 되어 사장-손님이자, 학부모-선생님 사이가 됐다. 같이 마켓도 열고 학원 아이들이 만든 책을 마그에서 전시하기도 했다. 생협 활동가들을 요리사로 모시고 채소 육수에 국수를 슴슴하게 말아 백석 시를 읽으며 먹은 날도 있었다. 자화자찬이지만 손님들이 다 책을 진지하게 읽는 분들이기에 마그에서 열리는 북토크는 늘 분위기가 좋다. 다정함과 진지함이 함께 넘친다.

책방 ‘마그앤그래’에서 진행된 ‘북 버스킹’ 행사.
책방 ‘마그앤그래’에서 진행된 ‘북 버스킹’ 행사.

이젠 손님이 아니라 마그의 친구들이 된 그들이 고른 책을 살필 때면 읽지 않았는데도 그 책들이 모두 내 것인 양 속이 뜨끈하고 든든해진다. 함께 읽을 책을 고르고, 읽은 책을 슬며시 나누는 우리는 사고의 궤적을 공유하는 사이다. 게다가 그 친구들은 인심 좋은 사람들이다. 불이 켜져 있으면 사가던 간식을 한 봉지 떨어뜨려 주고, 책방지기가 졸저를 써내면 “출산만큼 힘든 일이지 않냐”며 미역을 안긴다. “오다 주웠다”며 불쑥 내민 꽃 한송이도 받아봤다. 전국 어디든 동네 책방 단골이라면 그는 책은 물론이고 사람을 좋아하는, 베풀 줄 아는 사람이리라. 마그를 지켜주는 친구들처럼.

책방 ‘마그앤그래’ 창가. 통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시다.
책방 ‘마그앤그래’ 창가. 통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시다.

화가는 별 하나에 친구 얼굴을 점으로 찍고, 서점 주인은 신간 한권에 그 책을 반길 사람을 떠올린다. 그 얼굴 중 상당수는 스쳐 지나간 과거형이라도 말이다. 느리고 번거롭고 더 비싸기까지 한데 책이 필요할 때마다 부러 찾아주는 사람, 그 한명 한명은 지극히 소중하고 또 대단히 희박하다. 5년이 지났어도 100명 근처도 못 간다. 하나의 책방을 살리는 데 어마어마한 숫자가 필요한 게 아니다. 책을 읽고 사는 한 사람이 단골이 되면 하나의 공간이 살아난다.

4주년 캐치프레이즈는 ‘꾸역꾸역 4년’이었다. 1년 더 버텼을 뿐 반전은 없다만 올해는 ‘할 만큼 했다’는 투정을 멈추고 찬찬히 5살 서점의 소망을 생각해본다. 최저임금을 받겠다는 원대한 목표는 잠시 제쳐놓는다. 요가원이 되면 좋겠다는 골골거리는 중년의 희망 사항도 접어둔다. 다섯살이면 어리디어리건만 책방 동네선 할머니 취급도 받는다. 그만큼 버티기 힘든 현실이다. 마그는 해맑은 다섯살이고 싶다. 매일 세상이 즐겁고 신기한 아이처럼 발랄하게 책을 더 사랑할 방법을 궁리하고 싶다.

책방 ‘마그앤그래’ 창밖 풍경.
책방 ‘마그앤그래’ 창밖 풍경.

수원/글 이소영, 사진 이유진 마그앤그래 책방지기

마그앤그래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세권로316번길 49

https://www.instagram.com/magandg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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