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책&생각] 정치와 타인의 고통

등록 2022-11-11 11:05수정 2022-11-11 11:38

강명관의 고금유사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 ( 齊 ) 나라 선왕 ( 宣王 ) 이 소를 끌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았다. 어디로 끌고 가느냐고 묻자 , 흔종 ( 釁鍾 ) 에 사용할 피를 얻기 위해 도축장으로 끌고 가는 참이란다. 흔종은 소를 잡아 그 피를 새로 만든 청동 종 ( 鐘 ) 에 칠하는 의식이다. 선왕은 소에서 평소 볼 수 없었던 신체 시그널, 곧 바들바들 떠는 모습을 보았다 . 불쌍한 생각이 왈칵 들었다  “ 죄 없는 소가 바들바들 떨며 죽을 곳으로 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구나 ! 양으로 바꾸어라 !” 선왕은 자기 생명의 소멸을 예감한 소의 고통에 공감했던 것이다 . 그런데 소 대신 죽는 양의 고통은 어떻게 할 것인가 . 맹자가 모순을 지적하자 선왕은 머쓱해 했다 .

맹자는 말을 틀었다 . “ 소를 양으로 바꾸라고 한 당신의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왕이 될 자질이다 .”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그 마음이 민 ( 民 ) 을 향할 때 만인의 존경을 받는 왕이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 이어 맹자의 입에서 도도하게 쏟아지는 유가 ( 儒家 ) 의 정치학은 전혀 어려운 말이 아니었다 .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 곧 측은지심 ( 惻隱之心 ) 이 정치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는 말의 반복일 뿐이었다 .

선왕은 맹자의 말을 들었던 것인가. 아니, 그랬다면 왕이 아니다. 그는 내분에 휩싸인 연 ( 燕 ) 나라를 침공하였고 일시 점령하였다. 역사 기록에 남을 만한 대규모의 약탈과 살인이 있었다. 그 뒤 연나라 장군 악의 ( 樂毅 ) 의 호된 반격으로 제나라는 72개 성을 잃고 멸망할 뻔했다가 전단 ( 田單 ) 의 분전으로 겨우 되살아날 수 있었다 . 역사는 두 차례 전쟁에 불쑥 등장한 악의와 전단이라는 두 전쟁영웅을 도드라지게 찬양한다 . 하지만 그 전쟁에는 군대의 살육과 민중의 죽음 , 약탈과 방화 , 파괴가 있었을 뿐이었다 . 이것이 소의 죽음을 불쌍히 여기던 선왕이 벌인 짓이었다 .

맹자는 다른 생명 , 다른 인간의 고통에 공감하는 측은지심은 인간이면 모두 갖고 태어난다고 말했다 . 측은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 측은지심을 갖는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 그것이 아주 드물게 , 예외적으로 불쑥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가뭇없이 사라지는 마음이 아니라는 말이다 . 곧 항심 ( 恒心 ) 으로서의 측은지심을 갖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라는 말이다 . 어느 날 죽을 곳으로 끌려가는 소를 불쌍히 여겨 살려주었던 선왕은 이내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인간의 생명을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 선왕은 항심으로서의 측은지심은 없었던 인간 ,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의 능력이 없었던 인간이라 하겠다 . 선왕만 없는 것이 아니었다 . 그것의 결여는 왕이란 존재의 속성이기도 하였다 . 이런 점에서 유가의 정치학은 실패의 역사를 반복했다 . 왕이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의 능력을 기르기를 바랐지만 , ‘ 이타 ( 利他 ) 의 정치 ’ 로 자기의식화를 이룰 것을 염원했지만 , 성공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

유가의 정치학과는 달리 현대의 민주정은 정치인을 걸러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는다 . 하지만 그 장치를 통한 선별이 실패했다는 것을 지금의 한국 정치에서 확인한다 . 오직 권력만 행사할 뿐 ,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이 전혀 없는 ‘ 정치업자 ’ 들이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 장치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 아니면 그 장치를 작동시키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가 . 우리 앞에 던져진 문제다 ( 이태원 참사로 인해 세상을 떠난 분들의 명복을 빈다 . 정말 미안하고 미안하다 !).

강명관/인문학 연구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