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 선생의 <남부군>이 출간된 이후 그동안 아무도 알지 못했던 빨치산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흥미를 느낀 여러 소설가가 내 부모를 찾아왔다.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던 나는 그런 상황을 일체 알지 못했다. 내 아버지는 그런 일을 시시콜콜 말하는 성격이 아니거니와 당시에는 내 자취방에 전화도 없어 방학이 아니면 소통할 길이 없었다.
어느 날, 송기원 선생이 찾아왔다. 당시 그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살이를 한 전설의 선배였다. 그런 양반이 나를 왜 찾는지 얼떨떨할 뿐이었다. 송 선생은 보자마자 대뜸,
“빨치산의 딸, 네가 써라.”
라고 했다. 송 선생의 말은 그제나 이제나 두서가 없다. 한참 만에야 이해한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송 선생도 다른 소설가들처럼 빨치산 이야기를 소설로 써볼까 하고 내 부모를 찾아갔다. 아버지는 길게 듣지도 않고 딱 잘라 말했다.
“내 딸이 쓸 거요.”
내가 재수 끝에 문창과에 입학했을 때 아버지는 내심 못마땅해했다. 어중간한 대학도 맘에 안 들었고, 과는 더더욱 맘에 안 들었다. 그래도 뭐라 하지는 않았다. 성적이 개판이라 뭐 달리 도리가 없기도 했다. 당신들의 이야기를 써줬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다는 건 꿈에도 몰랐다.
다른 작가들은 아버지의 말에 다들 섭섭해 하며 그냥 돌아섰단다. 그러나 송 선생은 달랐다.
“딸이 뭐하는데요?”
“문창과 졸업반이오.”
“그럼 지금 쓰게 하지요. 빨치산의 딸, 제목도 좋네.”
좌파 선정주의라는 말을 듣기도 했던 제목은 그렇게 정해졌다. 송 선생은 그 무렵 실천문학의 사장이었고, 실천문학은 도종환 선생의 <접시꽃 당신>이 공전의 히트를 치는 바람에 대한극장 뒤 주택가에 2층짜리 사옥까지 마련한 참이었다. 내 습작소설 한번 읽은 적 없는 송 선생이 뭘 보고 그리 파격적으로 대우를 해줬는지 모르겠다. 매달 삼십만원의 집필료는 물론 실천문학의 방 한 칸까지 집필실로 내주는 조건이었다. 겨울호부터 연재를 시작할 테니 무조건 11월 초까지 원고를 보내라고 했다. 사실 나는 대학 시절 내내 겨우 세 편의 단편밖에 쓰지 못했다. 그런 주제에 장편이라니! 송기원 선생이 일단 빨치산의 딸로 살아온 내 이야기로 시작을 해보라고 알려주었다. 내 이야기라면야 푹 삭힌 홍어 같은 것들이 차고도 넘쳤다.
첫 번째 연재분은 순식간에 썼다. 고작 한 회분으로 써야 한다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쓸 이야기는 많았다. 스무 살까지 나의 삶을 짓누르던 게 ‘빨치산’이지 않았겠는가. 어떻게 썼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이야기가 이야기를 불러 신들린 듯 써내렸다. 뒤에 이어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는 철저하게 구술에 의존했다. 구술에 묘사를 덧붙이는 정도? 당시 나는 사노맹의 문학 기관지였던 <노동해방문학>에서 일하고 있었던 터라 집에 돌아와서 깊은 밤까지 부모님의 구술을 듣고 새벽까지 백 매 정도씩 써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그때는 젊었고, 힘든 줄은 몰랐다.
연재를 시작하자마자 반향이 컸다. 빨치산의 이야기도 생소한데 그 딸의 이야기여서 그랬을 것이다. 네 번 연재하고 책을 냈는데,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실천문학 사장이 구속되고, 책은 이적표현물로 판매금지당했다. 나는 숨어다니는 신세가 됐다. 그러려니 했다. 그런 시절이었으니까. 어쨌든 책은 한 달 만에 십만 부 가까이 나갔고, 십만의 사람들이 빨치산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는 의미니까. 그러자고 쓴 책이었으니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사람들이 자꾸 나를 작가라고 부르는 게 아닌가.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여성지 기자들도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통에 나는 식겁을 했다.
“아니요! 소설이 아니라니까요. 실록이라구요.”
아무도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소설이 아닌 실록을 발표하고 나는 터무니없이 작가가 되었다. 그래서 오래도록 글을 쓰지 못했다. <빨치산의 딸>은 소설이 아니다. 거기에는 단 한 줄의 거짓도 없다. <빨치산의 딸>은 시대가 필요로 한 역사적 기록일 뿐이다.
정지아/소설가
행복(창비, 2004)
오래도록 소설을 쓰지 못했다. 소설이 뭔가 싶어 대학원에 진학했고, 6년 만에 처음으로 소설을 썼다. 나의 사랑하는 신상웅 선생이 되겠다, 하셨다. 처음으로 신춘에 응모를 했고 당선이 되었다. 작가가 되어 처음으로 세상에 내보이는, 빨치산의 딸로서의 잔재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이야기들.
봄빛(창비, 2008)
이 무렵 아버지는 치매 진단을 받았고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봄빛’은 치매 걸린 아버지 이야기, ‘세월’은 그런 남편을 지켜보는 어머니 이야기. 무거운 짐을 진 채 올곧게 걸어가는 사람들이 이 소설집의 주인공이다. 삶은 여전히 무거웠고, 이 무렵 내 생의 자세는 ‘견딤’이었다.
숲의 대화(은행나무, 2013)
아버지가 떠났다. 나는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체제에는 반항이라도 할 수 있지 늙음이나 죽음에는 무엇으로도 대항할 수 없다. 대항할 수 없다면 즐길밖에. 이데올로기에 붙박여 있던 발도 살살 움직여보는 것으로. 안으로만 향해 있던 나의 시선이 밖으로 향하기 시작한 최초의 소설집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창비, 2022)
아무도 빨치산에 관심이 없을 것 같아서, 빨치산이 뭔지도 모를 것 같아서, 처음으로 전략이라는 걸 세워본 소설. 그리고 내 최초의 장편소설. 가벼워지니 널리 보이고, 널리 보이니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널리 읽히나? ‘빨치산’이라는 특수성보다 ‘아버지’라는 보편성이 더 중요한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