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이 쓴 눈멂의 역사
‘극복’ 서사 폄하된 헬렌 켈러
문자 좌우해온 시각중심주의
“눈멂 역시 하나의 관점이다”
‘극복’ 서사 폄하된 헬렌 켈러
문자 좌우해온 시각중심주의
“눈멂 역시 하나의 관점이다”
눈멂의 역사에 관한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탐구
리오나 고댕 지음, 오숙은 옮김 l 반비 l 2만원 “천상의 빛이여/ 마음에 들어와 환히 빛나라/ 거기 눈을 심어 모든 안개를 흩어버려라/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내가 식별할 수 있도록.”(존 밀턴 <실낙원> Ⅲ 51~55행, 필자 윤문) <실낙원>은 밀턴이 실명 이후 구술방식으로 지은 서사시. 원조 인간 부부의 낙원 추방 얘기지만 실은 눈뜸과 눈멂에 관한 탐구다. ‘육의 실명은 곧 영의 눈뜸’이라는 클리셰에 대못을 박았다. <거기 눈을 심어라> 지은이가 눈멂/눈뜸의 ‘결정적 순간’(“거기 눈을 심어”)에서 표제를 따온 것은 도발적이다. 선악과를 훔친 이브처럼 논쟁적 핵을 훔쳐, 늙은 시인한테 한방 먹이고 우리한테도 먹으라고 권한다. 눈멂의 역사에 관한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탐구라는 온건한 부제를 달았으나 내용은 편두에 번쩍 불이 보일 정도로 강한 펀치다. 우려먹고 고아먹는 헬렌 켈러(1880~1968)가 단적인 사례. 생후 19개월에 열병을 앓아 눈과 귀가 멀었다. 딸에 대한 엄마의 지극사랑은 설리번을 스승으로 들였고, 동병상련 스승의 지극정성으로 켈러는 미몽에서 깨어나 언어를 배움으로써 세상에 나와 대학을 수석 졸업했다. ‘대단해요’ 위인전은 그가 20대에 쓴 <헬렌 켈러 자서전> 요약, 끝이다. 전형적인 영감 포르노(inspiration porn)다. 정작 그의 세계관과 자신의 생각하는 방식을 기술한 <내가 사는 세계>는 외면 받아 절판된 지 오래다. 그는 여든여덟까지 꾸준히 대사회 발언을 하며 살았다. “장애인이 뭘.” 개무시 당하면서 살아낸 세월이 60년을 훌쩍 넘는다.
시각장애인 작가·공연예술가 리오나 고댕. 누리집 갈무리
시각장애인 작가·공연예술가 리오나 고댕. 누리집 갈무리
시각장애인 작가·공연예술가 리오나 고댕.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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