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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미그기 몰고 귀순한 그는 미국을 선택했다

등록 2022-12-30 05:01수정 2023-01-01 14:18

위대한 독재자와 전투기 조종사

1953년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노금석 스토리

블레인 하든 지음, 홍희범 옮김 l 마르코폴로 l 2만7000원

북한 무인기를 격추하기 위해 출동했던 우리 공군기의 추락 소식으로 나라 안이 온통 시끄러울 때, 마침 미국 작가이자 언론인 블레인 하든이 쓴 <위대한 독재자와 전투기 조종사>를 읽었다. <워싱턴포스트> 동아시아 특파원을 지낸 하든은 2012년 탈북민 신동혁을 인터뷰하여 <14호 수용소 탈출>을 펴낸 바 있다. 신동혁은 2015년 자신이 쓴 글의 일부에 과장과 거짓이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위대한 독재자와 전투기 조종사>는 1953년 미그15 전투기를 몰고 망명한 북한 조종사 노금석의 생애를 씨줄 삼고, 북한에서 김일성 체제가 수립되는 과정을 날줄 삼아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 북한의 정치 상황과 북한군의 실태를 상세하게 담고 있다.

내 또래들은 대부분 1970~80년대 반공웅변대회나 글쓰기대회에 참가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환경 미화 시간마다 교실 뒤편에 각종 반공 안보 자료들을 덕지덕지 붙여두곤 했다. 그때 처음 접한 이름이 1953년 9월21일, 자유를 찾아 월남한 북한군 조종사 노금석이다. 흥미를 끌었던 까닭은 목숨을 걸고 ‘자유대한’으로 넘어온 그가 어째서 최종망명지로 미국을 선택했느냐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 이유를 담임도 몰랐고, 이후 어디에서도 시원한 답을 구할 수 없었다. 그는 한국에서도 잊힌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 노재협은 1904년생으로 기독교 신자였고, 일제 시기 한반도에 투자된 자본의 4분의 1을 차지하던 일본 재벌 노구치상사의 현지경영자이자 중역이었다. 부친은 캐나다 출신 선교사가 운영하던 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노금석은 당시 조선의 평범한 아이들이라면 결코 누릴 수 없었던 풍요, 야구 글러브와 싱어재봉틀, 수백 장의 레코드판을 경험하며 성장했다. 집에서도 일본어를 사용했고, 가끔 영어를 가르쳤으며 조금 더 자라면 ‘오카무라 기요시’란 이름으로 일본 본토의 대학에 진학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히로히토 천황을 살아 있는 신으로 여겼던 노금석이 가미카제가 되고 싶다고 하자 아버지는 자식에게 “미쳤어?”라고 외쳤다. 그는 조선의 현실주의자였지 결코 일본의 애국자는 아니었다. 일본이 패망하고 소련이 진주하며 악몽이 시작되었다. 부친이 위암으로 사망하자 홀로 된 어머니와 살아남기 위해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위장했지만, 소년 노금석은 종교가 사기라는 사실은 용납할 수 있어도 미국이 가난하다는 선전만은 수용할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그가 어린 시절 보았던 그림책 속 캘리포니아의 한 부부가 키우는 강아지조차도 현재의 자신보다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운 좋게 사관학교에 진학한 그는 조종사 훈련에 동원되었지만, 자신의 출신성분이 들통날까 두려워했다. 미그기 조종사가 된 그는 미 공군의 세이버 전투기와 공중전을 벌이는 중에도 호시탐탐 월남할 기회를 엿봤다. 그런 와중에 어머니가 월남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면서 그는 마침내 목숨을 걸고 월남을 결심하게 된다. 월남 이후 꿈에 그리던 미국행을 선택했고, 현재까지도 미국에서 거주하는 그에게 한 가지 불행은 2008년 9월21일, 자신이 망명한 지 55년째 되는 날 그의 아들이 아내를 권총으로 살해한 뒤 자살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국민이 되기로 했던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전성원/<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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