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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선생님 말씀대로 주눅 들지 않겠습니다 [책&생각]

등록 2023-02-10 05:01수정 2023-02-10 09:09

백기완 2주기 앞두고 추모집 발간
노동·농민·빈민 활동가들 회고글
투사 이면의 따뜻한 면모 부각
선생을 거울삼겠노라는 각오도
2016년, 세월호 참사 유족들과 함께한 백기완 선생(앞줄 가운데). 사진 채원희, 돌베개 제공
2016년, 세월호 참사 유족들과 함께한 백기완 선생(앞줄 가운데). 사진 채원희, 돌베개 제공

기죽지 마라
우리가 백기완이다!
여럿이 함께 씀,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엮음 l 돌베개 l 1만9000원

“이봐! 기죽지 말고 배짱을 가져. 당당하게 자신 있게 살어!”

세종호텔 노동조합 지부장 고진수가 백기완 선생에게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선생이 들려준 덕담이다. 백기완 선생 2주기(2월15일)를 앞두고 나온 추모집 <기죽지 마라>에서는 고진수와 비슷한 고백을 여럿 만날 수 있다. 기륭전자 해고노동자 출신인 김소연, 전 케이티엑스(KTX) 열차승무지부 지부장 김승하가 마찬가지로 ‘기죽지 마라’고 했던 선생의 격려를 회고한다. 심지어는 생전에 백 선생을 직접 만난 적 없는 조선소 하청 노동자 유최안 역시 ‘기죽지 마라’는 말로 선생을 기억한다. “선생님! 만나 뵐 순 없었지만 ‘기죽지 마라!’ 그 한마디 감사했습니다.”

<기죽지 마라>에는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빈민운동 활동가 등 38명의 글이 묶였다. 당대의 가장 치열한 싸움 현장을 담은 글들이어서, 엮은이의 말대로 “21세기 한국 노동운동사”라 할 법하다. 4부로 나뉘어 실린 글들을 읽다 보면 백기완 선생이 우리 사회 고난과 투쟁 현장을 살뜰히 챙기고 함께했다는 사실에 우선 놀라게 된다. 해고와 죽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투쟁, 용산과 세월호 참사, 농성과 오체투지 등에 그는 늘 함께했고 말과 행동으로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제 기억 속에서 가장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을 떠올릴 때면 백기완 선생님이 그 자리에 함께하십니다.”(세월호 참사 단원고 고 오영석 군의 어머니 권미화)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우리에게 걸어오신 그분은 좌충우돌하며 투쟁하는 우리를 안타까워하시며 위로해 주셨다.”(김승하)

2015년,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민중 생존권 사수를 위한 행진에 참여한 백기완 선생(앞줄 가운데, 흰 점퍼에 목도리 차림). 사진 채원희, 돌베개 제공
2015년,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민중 생존권 사수를 위한 행진에 참여한 백기완 선생(앞줄 가운데, 흰 점퍼에 목도리 차림). 사진 채원희, 돌베개 제공

권력과 자본을 향해 거침없이 사자후를 토해 내는 ‘투사 백기완’에 익숙한 이들에게 이 책에서 소개되는 인자하고 따뜻한 백기완의 모습은 낯설게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글을 쓴 거의 모든 이들이 선생의 인간적이며 자상한 면모를 회고한다. 발전소 산업재해로 숨진 청년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은 아들의 빈소에서 처음 만난 선생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놀란 경험을 소개한다. “성치 않은 몸이라 그저 묵념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손자뻘 되는 아들한테 큰절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쌍용차 범국민대책위 기자회견장에서 지부장 김정우가 먼저 숨진 동료들의 이름을 부르며 울먹이자, 백 선생은 “야! 김정우, 울지 말라우! 싸우는 노동자는 우는 거 아니야!”라며 호통을 쳤지만, 이내 스스로도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대책위 관계자들은 물론 취재하던 기자들 역시 눈물에 동참했다.

강인한 투사이자 자상한 아버지와도 같았던 백기완 선생의 이런 면모는 남은 이들에게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로 구실 한다. “선생님은 그렇게 힘들어하시면서도 왜 노동자들, 고통받는 이들의 옆자리를 지키려고 하셨을까” 궁금해하던 사진가 정택용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면 왜 사진을 찍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고 쓴다. 시인 송경동 역시 선생이 안일해지려는 자신을 비춰 보는 거울 역할을 한다고 고백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김혜진의 글이 추모집의 결론으로 맞춤하다 싶다.

“백기완 선생님을 추모한다는 것은 ‘주눅 들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주눅 들지 않는다’라는 것은 ‘우리가 옳다’라는 자신감만이 아니라 우리가 힘이 있다는 자각이 있을 때 가능한 것 같다.”

백기완 선생이 2017년 창경궁에서 손짓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채원희, 돌베개 제공
백기완 선생이 2017년 창경궁에서 손짓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채원희, 돌베개 제공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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