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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순화군과 연진이의 ‘폭력 면허’, 문제는 정치다 [책&생각]

등록 2023-03-17 05:01수정 2023-03-17 11:42

강명관의 고금유사
시리즈 <더 글로리>의 한 장면.
시리즈 <더 글로리>의 한 장면.

선조의 넷째 아들 순화군(順和君) 이보가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17살 때부터다. 황해도 신계(新溪)에 머물던 이자는 대접이 제 마음에 차지 않으면 시도 때도 없이 형장(刑杖)을 휘둘렀다. 신계 사람들은 겁에 질려 달아났다. 2년 뒤인 1599년에는 이웃 사람을 때려죽였다. 왕의 자식이라 처벌받지 않았다. 1600년 선조의 첫 비(妃)인 의인왕후(懿仁王后) 박씨가 사망했다. 20살 순화군은 의인왕후의 빈전(殯殿)에서 생모 순빈 김씨를 모시던 계집종을 강간했다. 처벌은 수원부로 귀양을 가는 데 그쳤다.

수원부에 감금했다 해서 개망나니 짓을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1601년 2월9일 술을 가지고 간 계집종 원금(元金)을 잡아 채 수문(水門)으로 끌어들인 뒤 난타했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당연히 없었다. 이틀 뒤에는 계집종 줏개를 끌고 들어가 발가벗긴 뒤 몸을 묶고는 날이 밝을 때까지 풀어주지 않았다. 같은 달 18일 수원부 읍내의 군사 장돌똥이가 전염병 귀신을 쫓기 위해 무녀를 불러 굿을 하고 있었다. 무녀는 윤화(允化)의 아내였는데 부부 모두 장님이었다. 망나니는 뜬금없이 돌똥이와 무녀를 잡아 수문으로 끌고 들어갔다. 고문을 하며 무언가를 물어본 뒤 두 사람을 결박해 매달았다. 이어 눈먼 무녀의 위 아래 이 각각 1개, 돌똥이의 위 아래 이 9개를 작은 철추(鐵椎) 곧 쇠몽치로 쳐서 부러뜨리고 집게로 뽑았다. 피가 얼굴을 가득 적셨고 숨이 막혔다. 무녀는 즉사했다. 돌똥이는 다음날 밖으로 끌고나왔지만, 이내 죽을 목숨이었다. 순화군의 잔혹한 살인극에 수원부사조차 먼 시골로 달아나 숨어 있을 지경이었다.

순화군은 정신질환자였던가? 자신이 하는 행위가 어떤 행위인지 몰랐던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이자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경망(輕妄)하여 사람을 구타하는 것은, 형(임해군)이 남의 땅과 집, 노비를 빼앗는 것보다 낫다.” 그러니까 이자는 자신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나쁜 짓인 줄 빤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폭력은 임해군이 남의 재산을 약탈하는 것보다 낫다는 논리를 동원할 수도 있었으니, 결코 정신이 병든 인간이 아니었다. 이 개망나니가 멀쩡한 정신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살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폭력과 살인의 면허를 받은 왕의 자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살인의 면허까지는 아닐지라도, ‘폭력의 면허’를 갖는 자들은 조선사회에 무수히 존재했다. 두말할 필요도 없는 진실이다. 아랫것들이 자신의 노동력과 생산물, 거기에 성(性)까지 고분고분 바칠 때는 폭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지만, 자발적 헌납을 거부하거나 혹 저항하는 낌새가 보이기라도 하면 기어코 피를 보고야 말았다. 요컨대 조선은 사족과 관료에게 폭력의 권력을 차등적으로 분배하는 체제로 보아도 무방한 것이다. 순화군의 후예들은 오늘도 날뛴다. 아비와 어미의 권력과 금력을 믿고 폭력과 살인을 저지르는 ‘연진이들’은 티브이 드라마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정말 희한한 것은 원금과 장돌똥이와 무녀의 후예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순화군과 연진이에게 폭력의 면허를 주려는 정치를 열렬히 지지하고 찬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이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사회는 앞으로 희망이 없을 것이다.

강명관/인문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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