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
김혜진 지음 | 민음사(2022)
살다 보면 누구나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마련이다. 엎어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다. 그래도 그 실수에 대한 대가가 가혹하면 삶은 파괴되고 만다. 김혜진의 <경청>에 나온 해수는 상담사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솔루션’을 잘 제시해 유명해졌다. 그날은 여러모로 일이 잘 안 풀렸다. 그러면 더 신중했어야 했다. 하지만 문제의 배우가 저지른 일은 분명히 비난받을 만했다. 그래서 비난조로 말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말 때문이었을까?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낭만적 사랑을 선택한 대가를 다루었다. 무척 불행한 성장사를 겪었지만, 가정부로서 일머리 있고 성실한지라 아파트를 마련할 정도로 안정된 삶을 살았다. 카니발 때 한 남성을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은행 강도인데다 살인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다. 열정을 이성으로 대체했다면 문제가 커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블룸은 자신의 사랑을 선택했다. 범죄자의 탈주를 돕고 은신처를 마련해주었다. 활극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싶었다. 경찰에 체포되었고 황색언론이 이 문제를 1면에서 다루었다. 저열하고 비열한 기사가 터져 나왔다. 누구도 그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묻지 않았다.
해수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직장을 잃고 이혼까지 했다. 억울했다. 어려운 일이 있을 적마다 도와준 후배가 있었다. 상담센터에 큰 소란이 나고 그 후배가 자책할 거라 걱정해 한밤중에 달려간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거취를 결정하는 회의에서 그 후배는 해수를 궁지로 몰았다. 센터가 문 열 때부터 십 년 동안 열과 성을 다해 일했다. 퇴사를 통보하면서도 어떤 과정으로 결정이 이루어졌는지 센터는 설명하지 않았다. 편지를 썼다. 비록 말의 미로에 빠지겠지만, 해야 할 말이 많지 않나. 그러나, 부치지 않고 찢어버렸다. 누가 들어주겠는가.
블룸이 겪는 일은 놀랍게도 오늘 우리가 보는 언론의 행패와 똑같다. 과거사가 들춰지고 일상의 삶이 다 까발려진다. 블룸이 입을 열면 망신당할 유력자는 언론을 회유해 외려 자기에게 유리하게 사실을 왜곡하고, 주변의 사람은 결국 그녀를 창녀로 몬다. 더 기막힌 것은 절대 안정이 필요한 어머니를 만나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뒤틀어버리는 것이다. 이 와중에 어머니는 돌아가신다. 만신창이가 되었다. 언론이 폭력이 되는 생생한 장면이다.
해수는 ‘왕따’ 당하는 초등학생 세이와 길고양이 순무를 구조하는 일을 함께한다. 두 존재가 겪는 고통이 자신이 견뎌야 하는 그것과 같다고 느껴서였을 테다. 이제 그녀는 다른 존재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게 도와줄 적에 자신도 고통의 늪에서 한 발짝 벗어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하나, 블룸은 탈출구가 없었다. 자신의 명예를 더럽힌 기자를 죽였다. 이 소설의 부제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인 이유다. 누구나 실수한다. 해수의 말대로 “시합은 다시 하면” 되고 “지는 쪽이 언제나 배우는 게 더 많은” 법이다. 하지만 이 바람이 얼마나 허망한지는 에스엔에스(SNS)를 보자마자 확인하게 된다. 이제, 실수한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그만큼만 책임지게 하자.
이권우/도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