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의 시대: 지구시민사회를 향하여’ (창비)
젊은 세대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반세계화’(반지구화)가 국내외 민주·진보 세력의 진언(眞言)이 되어 있던 시절이 있었다. 사회운동, 노동운동, 학생운동, 농민운동은 ‘지구화’가 하나의 단일한 글로벌 공동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 안에 들어 있는 초국적 자본의 절대적 지배 프로젝트라고 파악했다. 그런 프로젝트를 뒷받침하는 경제이념이 곧 신자유주의라고 해석했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는 관점에 따라 극과 극의 평가가 나오지만 그것이 세상을 천지개벽시켰다는 데에는 대다수가 동의한다. 그저 돌아가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초강력 엔진을 장착한 ‘터보 자본주의’, 보통사람이 감각할 수 있는 생산-소비의 경제활동이 아니라 약물로 금융 근육을 기형적으로 키운 ‘스테로이드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로 표상된 것이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1999년 11월30일 이른바 ‘시애틀 대첩’이 일어났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를 앞장서서 이끌어가던 세계무역기구(WTO) 회의에 반세계화 운동세력이 집결하여 엄청난 규모의 항의 시위를 벌여 일대 파문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언론사로부터 그렇게 많은 전화를 받아 본 기억이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다. 질문은 두 가지였다. 시위대가 도대체 왜 저러냐? 도대체 엔지오가 무어냐?
엔지오(NGO), 즉 ‘비정부기구’는 말 그대로 국가나 정부와 같은 공공조직도, 기업이나 회사와 같은 영리조직도 아닌 제3의 자율조직을 뜻한다. 특히 민주주의, 시민사회, 성평등, 인권, 환경, 노동 등의 가치를 지향하는 시민사회단체를 가리킨다. 신사회운동에 특화된 새로운 형태의 전문적 운동조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엔지오가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된 것은 1992년의 리우환경회의 때부터인데, 한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 들어 조금씩 소개되기 시작했다.
시애틀 시위가 터질 무렵 나는 이미 엔지오에 대한 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솔직히 시애틀 같은 사건을 예상치는 못했고, 대학원에서 ‘세계와 NGO’라는 과목을 가르치기 위해 개론에 해당하는 교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단독 저술을 할까 했는데 창비에서 엔지오와 관련한 주요 논문들을 우선 체계적으로 소개하자고 제안했다. 해외 논문 11편과 국내 논문 4편을 고르고 골랐다. 외국 글은 직접 번역하고, 국내 글은 저자들과 상의하여 약간의 에디팅을 했다. 그리고 긴 권두논문을 써서 실었다. 그렇게 해서 2000년 10월에 나온 책이 〈NGO의 시대: 지구시민사회를 향하여〉(창비)다.
그 전에도 책이나 자료집을 만든 적이 있었지만 사실상 이 책이 나의 첫 저작이다. 책이 나오고 한 달이 채 안 돼서 중쇄를 찍었으니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반응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거의 사반세기가 흐른 오늘의 눈으로 책을 다시 보니 몇 가지 특징이 보인다.
우선 당시의 낙관적 엔지오론의 분위기 속에서 나온 책이지만 내 나름대로 엔지오의 특장점과 한계를 객관적으로 소개하려고 애썼다는 점이 눈에 띈다. 특히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엔지오의 대표성과 정당성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고민한 흔적이 많다. 또한 국내 시민운동의 틀을 넘어 전 세계 시민사회와의 소통과 연대를 강조한 점도 확실히 드러난다. 또 하나는 결국 엔지오 운동의 큰 흐름이 지구화와 빈부격차, 그리고 국제개발의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 예상한 점도 대체로 맞아떨어진 것 같다. 그러나 기후위기나 환경문제가 이렇게까지 전지구적인 쟁점이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 후 지금까지 꽤 많은 책을 냈는데 크게 보면 세 갈래로 연구가 진행되었다. 우선 엔지오, 시민사회, 지구화에 관해서 <전지구적 변환>이나 <직접행동> 같은 책을 냈다. 인권 담론에 대한 책으로는 <인권의 문법>, <인권의 지평>, <인권 오디세이> 등이 있다. 최근엔 기후-생태 위기와 인류세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 있는데 이 주제가 내 인생 후반부의 학문 여정이 될 것 같다. 뒤늦게 전혀 새로운 주제를 공부하자니 애로사항이 많지만 그만큼 현재 상황에 걱정이 많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성공회대학교 교수
세계인권사상사
수천 년의 인권 발전상을 정리한 이샤이 교수의 통사를 읽자마자 필히 번역해야겠다는 욕구가 솟았다. 저자와 소통하면서 내용을 상당히 보완하여 ‘한국어 개정판’으로 출간했다. 학생들이 베고 자기 좋은 목침이라고 부른다는 소리를 나중에 들었다.
미셸린 이샤이 지음, 조효제 옮김, 길(2005)
인권의 최전선
<한겨레>에 ‘인권 오디세이’라는 글을 연재했었다. 인권의 다양한 이슈를 소개하고 개별 권리만큼이나 구조적 차원을 보자는 주장을 폈다. 이 책은 시리즈를 두 번째로 묶은 것이다. 일간지에 십 년이나 인권으로 연재를 하다니 내 스스로 믿을 수가 없을 정도다.
교양인(2020)
탄소 사회의 종말
기후는 인권 문제라고 강조한 책이다. 국제사회에서 오래 전부터 자리잡은 관점이고 한국에서도 최근 국가인권위까지 나서서 인정하기 시작한 주제다. 원고에서 기후변화와 신종감염병의 관련성을 쓰던 중에 코로나 사태를 맞았다. 소름이 끼쳤다.
21세기북스(2020)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를 동전의 양면으로 보면서 함께 대처하자고 한 책이다. 에코사이드(생태살해)는 제노사이드(집단살해)와 동일한 수준의 범죄로 봐야 하는 문제다. 인간의 권리와 자연의 권리가 공존하는 길을 찾자, 그것이 시대정신이다.
창비(2022)